혈연 지연 학연보다 더 센 파벌(派閥)이 생겼다고 한다. 바로 ‘흡연’이다. 담배 피울 곳이 사라진 흡연파들이 골목길이나 빌딩 구석에 모여들다 보니 연대감(?)이 예전보다 훨씬 단단해졌다는 우스갯소리다. 앞으로 흡연(吸煙)을 ‘吸緣’으로 써야할지도 모르겠다.

파벌은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한 사람들의 집단’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무리짓기는 본능에 가깝다. 한정된 자원을 놓고 다퉈온 것이 인류 역사인 만큼, 파벌은 정도 차이가 있을 뿐 어디에나 존재한다. 가장 원초적 파벌은 피붙이들의 족벌주의다. 족벌주의를 뜻하는 네포티즘(nepotism)은 라틴어로 성직자의 사생아(nephew)를 가리키는 ‘nepos’에서 유래했다. 교황들은 종종 사생아들을 중용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칭송했던 체사레 보르자도 그런 경우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동서양이 크게 다르지 않다. 케네디 대통령은 동생 로버트를 법무장관에, 매제이자 훗날 슈워제네거의 장인이 된 사전트 슈라이버를 초대 평화봉사단장에 기용했다. 사마란치는 IOC 위원장 시절 아들은 IOC 위원에, 딸은 스페인 빙상연맹 회장에 앉혔다.

결속력 면에선 시칠리아 마피아를 따라갈 집단이 없다. 마피아에는 ‘오메르타(omerta)’라는 침묵의 계율이 있다. 시칠리아 속담에 “듣지도 보지도 않고 조용히 있는 자만이 100년을 편안하게 살 수 있다”가 곧 오메르타다.

무리짓기가 보편적 현상이라 쳐도 한국인의 파벌의식은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공식조직보다 동창회, 향우회 등 비공식조직이 더 실속 있는 사회가 또 있을까 싶다. 500년 주자학 명분론이 각인된 탓인지, 학계나 종교계에선 정통·이단 논쟁에 민감하다. 다툼은 곧 결별로 이어진다. 문화체육관광부 백서에 따르면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이름을 쓰는 교단만도 170여개라고 한다.

배타성이 강할수록 파벌의 내부통제도 강화된다. ‘우리가 남이가’는 뒤집어보면 ‘남은 곧 적이다’라는 배타성에 다름 아니다. 개인의 이기심을 집단 이기심으로 치환해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겠다는 욕심이 깔려 있다. 그런 점에서 파벌은 인간 나약성의 증표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빅토르 안(안현수)의 러시아 귀화과정을 지적하자 문화부가 뒤늦게 조사에 나섰다고 한다. 체육계의 파벌주의 병폐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축구 국가대표를 둘러싼 파벌 다툼이 히딩크가 와서야 풀렸다고 했겠는가. 실력보다 파벌을 중시하는 전근대성은 반드시 사라져야 할 유산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