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최병일 前한국경제硏 원장 "경제민주화, 모든 문제를 1% VS 99% '善惡 게임'으로 몰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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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마치고 강단으로 돌아가는 최병일 前한국경제硏 원장
'부자나라 됐다는데…1%가 다 가진 것 아니냐' 인식 확산
정치인들 '솔깃한 논리'로 일감 몰아주기 등 규제 양산
수출에만 기댄 경제…삼성·현대차 삐끗하면 어떻게 될지…
'부자나라 됐다는데…1%가 다 가진 것 아니냐' 인식 확산
정치인들 '솔깃한 논리'로 일감 몰아주기 등 규제 양산
수출에만 기댄 경제…삼성·현대차 삐끗하면 어떻게 될지…
한동안 재계에선 ‘포스트 박용성이 없다’는 말이 돌았다. 2003~2005년 대한상공회의소를 이끌던 박용성 전 회장(현 중앙대 이사장)은 ‘미스터 쓴소리’란 별칭이 따라붙을 정도로 청와대나 정부를 거침없이 비판했다. 그러나 박 전 회장 이후 기업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뚝 끊겼다. 2012년부터 불어닥친 경제민주화 광풍에 기업들은 바짝 엎드려 있었다. 그때 경제민주화의 허상을 지적하는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은 사람이 최병일 전 한국경제연구원장(56)이다. 반(反) 경제민주화 선봉에 섰던 그가 최근 임기를 마치고 대학 강단으로 돌아간다. 지난 11일 최 전 원장을 서울 여의도 집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앞으로 2년 이내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꾸지 않으면 다음 총선·대선이 있는 2016~2017년엔 더 거센 경제민주화 광풍이 불어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격변의 시대에 재계 싱크탱크로서 어떤 목소리를 냈나.
“그동안 세상을 1% 대 99%의 양극화 프레임으로 보는 시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주력했다. 그 과정에서 충돌도 많았다. 대표적인 게 경제민주화다. 누구도 경제민주화 열풍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때 우리(한경연)가 깃발을 들고 나섰다. 나는 경제민주화 자체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경제민주화와 성장은 자동차의 브레이크와 엔진 같은 관계다. 그랬는데도 일부 언론에서 ‘한경연이 헌법에 있는 경제민주화 조항을 삭제하라고 주장한다’고 보도하더라. 2년간 지난한 싸움을 벌였다. 정부 정책기조가 경제 활성화로 바뀌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경제 체질을 개선하자는 주장도 폈는데,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는지.
“한계에 봉착한 대기업 수출 중심의 성장 패러다임을 내수 진작으로 전환하자는 의미로 ‘서비스 빅뱅’, 한국형 복지모델 담론을 제시했다. 이를 정부가 최근 받아들였다.”
▷경제민주화 반대논리의 중심에 있었다.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보나.
“경제 문제를 선악(善惡)의 게임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참 잘못된 생각이다. 경제민주화는 1원 1표로 작동하는 시장에 1인 1표의 정치 논리를 도입하자는 얘기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재분배를 통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치세력이 성공한 적이 없다. 경제 호황일 때는 모르지만 불황이 닥칠 때 어느 정부가 끊임없이 재분배 정책을 펼 수 있겠나. 결국 성장이 지속돼야 분배도 가능해진다.”
▷선악의 게임으로 만들어진 대표적 정책으로 뭘 꼽을 수 있나.
“일감 몰아주기 규제다. 일부 기업 대주주가 일감 몰아주기로 상속·승계에 악용하는 측면은 분명히 있다. 그런데 모든 기업이 그렇다고 일반화하는 게 문제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기업은 안정적인 가격·조건으로 부품 등을 공급할 수 있는 곳과 거래하려 한다. 이를 위해 그런 역할을 할 계열사를 두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게 바로 ‘거래비용의 경제학’이다. ‘100명의 악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선한 사람을 범죄자로 몰아서는 안된다’는 게 사법제도의 원칙인데, 이건 완전히 반대 아닌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1% 대 99%의 대립이 (경제민주화의) 근본원인이란 지적도 있다.
“그런 상황을 정치게임으로 끌고 가는 세력이 문제다. 대부분 유권자는 중도에 있는데, 정치인들이 정파적 목적으로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정치인들만의 책임인가.
“이런 측면도 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구매력으로 환산하면 일본, 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스스로 잘 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통계적으로는 중산층 비율이 60%인데, ‘당신은 중산층이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는 ‘기대수준’과 ‘현실’의 괴리 때문이다. 모두가 대학을 나오는데 좋은 일자리는 한정돼 있으니 기대수준이 충족될 수 없다. 그래서 ‘나라는 부자가 됐다는데, 부는 어디로 갔지? 1%의 소수가 다 가진 것 아니냐’는 주장에 솔깃하는 것이다. ”
▷경제민주화 논란이 또 불거질 수 있다고 보나.
“경제 체질을 바꾸지 않는다면 데자뷔(deja-vu·기시감)처럼 반복될 것이다. 영국 등 선진국도 그랬다. 20세기 초 세계 초강대국이던 영국은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이류국가로 전락했다. 그런데 한 번 선진국이 됐던 경험 때문에 국민들의 기대수준은 높아지고 다양한 이해집단이 기득권화되면서 정치·경제 체질을 바꾸려는 시도에 저항했다. 그걸 바꾼 게 대처 전 총리다. 박근혜 정부가 체질 개선을 할 시간은 고작 2년이다. 2년 내 근본적 수술을 하지 못하면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때 분배를 요구하는 거대한 경제민주화 광풍이 불 것이다. ”
▷그런 광풍을 피할 해법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그래서 성장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 경제는 지금 세 가지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15위다. 그런데 무역 규모는 세계 7~8위권이다. 바꿔말하면 내수가 취약하다는 얘기다. 지금까지는 내수 없이 수출엔진 하나로 버텨왔다. 삼성이나 현대자동차 등 수출기업이 지금처럼 계속 잘 해주면 문제될 게 없는데, 한두 개 기업이 망가지고 다른 기업이 그 정도 규모로 성장하지 못한다면 수출엔진까지 망가지게 된다. 이게 첫 번째 충격이다. 그런데 정부나 정치권은 대기업이 고용 없는 성장을 한다고 비판하고, 국내 투자를 늘리라면서 그럴 여건은 만들지 않는다.”
▷또 다른 충격은 뭔가.
“두 번째는 고령화다. 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나라다. 이래서는 기업들이 제조 기반을 국내에 두기 어렵다. 이 문제에 대해 정부가 작년에 내놓은 정책이 정년 연장인데 임금피크제 등 보완책 없이 도입한다고 해서 노사갈등만 키워놨다. 세 번째는 일자리 문제다. 현 경제구조에서 필요한 건 신축적이고도 유연한 일자리다. 고학력 여성인력의 경력단절 현상이 심각하지 않나.”
▷2년 내 정부가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게 가능한가.
“어렵더라도 일단 시작해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는데 현 정부는 작년 1년을 경제민주화로 보냈다. 문제는 앞으로 몇년간 1% 대 99%의 갈등이 계속될 것이란 점이다. 우리 사회엔 노사 갈등 등 ‘지진대’가 너무 많다. 지금 경제 체질을 개선하지 않으면 세계 경제가 갑작스러운 호황을 맞고, 한국이 그 호황의 뒷바람을 타는 행운이 없는 한 우리 경제는 뒷걸음질칠 수밖에 없다.”
▷한경연 얘기를 해보자. 한국엔 왜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같은 싱크탱크가 없는 건가.
“두 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먼저 재정 독립이다. 브루킹스나 헤리티지는 안정적 운영에 필요한 기금이 조성돼있어 국가 전략에 대한 대안과 담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 두 번째는 ‘사람’이다. 브루킹스와 헤리티지는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전직 및 예비 고위직 관료가 많이 몸 담는다. 그런데 한국은 정반대다. 나도 역량있는 정부 관료 출신을 영입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는데 다들 손사래 쳤다. 나중에 고위직에 오를 때를 대비해 그런 이력을 갖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
▷대학강단 복귀 뒤 활동 계획은.
“벼랑 끝에 처한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는 전략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 또 진영논리를 극복할 수 있는 갈등관리·신뢰구축 방안도 모색하려고 한다. 대표적인 게 복지다. 많은 사람이 스웨덴을 한국이 닮아야 할 복지모델로 여긴다. 그런데 간과한 게 있다. 스웨덴은 원래부터 경제가 굉장히 강한 나라였기에 복지국가가 가능했다는 점이다. 그런 스웨덴도 과도한 복지 탓에 경제가 거덜 난 적이 있다. 지금껏 우리가 겪은 복지 논란은 맛보기일 뿐이다. 앞으로 더 심각한 논쟁이 있을 것이다.”
■ 최병일 전 원장은
한국 자유주의 경제학계를 대표하는 학자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딴 뒤 1997년부터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실천형 학자다. 대학 강단에만 머물지 않고 정부부처, 시민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등 현장 감각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0년대에는 당시 체신부 장관 자문관,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을 맡아 한국의 대외 통상 협상을 주도했다. 1990년 우루과이라운드 서비스협상 한국 대표, 1997년 세계무역기구(WTO) 통신기본협상 수석대표를 맡았으며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때도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2004년부터 2011년까지는 바른사회 시민회의 사무총장과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했고, 이후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도 맡는 등 보수 시민단체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2007년부터 이대 국제대학원장으로 재직하던 그는 2011년 12월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 요청으로 한국경제연구원장으로 자리를 옮겨 2년간 재계의 대표 싱크탱크를 이끌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
“그동안 세상을 1% 대 99%의 양극화 프레임으로 보는 시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주력했다. 그 과정에서 충돌도 많았다. 대표적인 게 경제민주화다. 누구도 경제민주화 열풍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때 우리(한경연)가 깃발을 들고 나섰다. 나는 경제민주화 자체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경제민주화와 성장은 자동차의 브레이크와 엔진 같은 관계다. 그랬는데도 일부 언론에서 ‘한경연이 헌법에 있는 경제민주화 조항을 삭제하라고 주장한다’고 보도하더라. 2년간 지난한 싸움을 벌였다. 정부 정책기조가 경제 활성화로 바뀌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경제 체질을 개선하자는 주장도 폈는데,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는지.
“한계에 봉착한 대기업 수출 중심의 성장 패러다임을 내수 진작으로 전환하자는 의미로 ‘서비스 빅뱅’, 한국형 복지모델 담론을 제시했다. 이를 정부가 최근 받아들였다.”
▷경제민주화 반대논리의 중심에 있었다.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보나.
“경제 문제를 선악(善惡)의 게임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참 잘못된 생각이다. 경제민주화는 1원 1표로 작동하는 시장에 1인 1표의 정치 논리를 도입하자는 얘기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재분배를 통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치세력이 성공한 적이 없다. 경제 호황일 때는 모르지만 불황이 닥칠 때 어느 정부가 끊임없이 재분배 정책을 펼 수 있겠나. 결국 성장이 지속돼야 분배도 가능해진다.”
▷선악의 게임으로 만들어진 대표적 정책으로 뭘 꼽을 수 있나.
“일감 몰아주기 규제다. 일부 기업 대주주가 일감 몰아주기로 상속·승계에 악용하는 측면은 분명히 있다. 그런데 모든 기업이 그렇다고 일반화하는 게 문제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기업은 안정적인 가격·조건으로 부품 등을 공급할 수 있는 곳과 거래하려 한다. 이를 위해 그런 역할을 할 계열사를 두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게 바로 ‘거래비용의 경제학’이다. ‘100명의 악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선한 사람을 범죄자로 몰아서는 안된다’는 게 사법제도의 원칙인데, 이건 완전히 반대 아닌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1% 대 99%의 대립이 (경제민주화의) 근본원인이란 지적도 있다.
“그런 상황을 정치게임으로 끌고 가는 세력이 문제다. 대부분 유권자는 중도에 있는데, 정치인들이 정파적 목적으로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정치인들만의 책임인가.
“이런 측면도 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구매력으로 환산하면 일본, 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스스로 잘 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통계적으로는 중산층 비율이 60%인데, ‘당신은 중산층이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는 ‘기대수준’과 ‘현실’의 괴리 때문이다. 모두가 대학을 나오는데 좋은 일자리는 한정돼 있으니 기대수준이 충족될 수 없다. 그래서 ‘나라는 부자가 됐다는데, 부는 어디로 갔지? 1%의 소수가 다 가진 것 아니냐’는 주장에 솔깃하는 것이다. ”
▷경제민주화 논란이 또 불거질 수 있다고 보나.
“경제 체질을 바꾸지 않는다면 데자뷔(deja-vu·기시감)처럼 반복될 것이다. 영국 등 선진국도 그랬다. 20세기 초 세계 초강대국이던 영국은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이류국가로 전락했다. 그런데 한 번 선진국이 됐던 경험 때문에 국민들의 기대수준은 높아지고 다양한 이해집단이 기득권화되면서 정치·경제 체질을 바꾸려는 시도에 저항했다. 그걸 바꾼 게 대처 전 총리다. 박근혜 정부가 체질 개선을 할 시간은 고작 2년이다. 2년 내 근본적 수술을 하지 못하면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때 분배를 요구하는 거대한 경제민주화 광풍이 불 것이다. ”
▷그런 광풍을 피할 해법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그래서 성장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 경제는 지금 세 가지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15위다. 그런데 무역 규모는 세계 7~8위권이다. 바꿔말하면 내수가 취약하다는 얘기다. 지금까지는 내수 없이 수출엔진 하나로 버텨왔다. 삼성이나 현대자동차 등 수출기업이 지금처럼 계속 잘 해주면 문제될 게 없는데, 한두 개 기업이 망가지고 다른 기업이 그 정도 규모로 성장하지 못한다면 수출엔진까지 망가지게 된다. 이게 첫 번째 충격이다. 그런데 정부나 정치권은 대기업이 고용 없는 성장을 한다고 비판하고, 국내 투자를 늘리라면서 그럴 여건은 만들지 않는다.”
▷또 다른 충격은 뭔가.
“두 번째는 고령화다. 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나라다. 이래서는 기업들이 제조 기반을 국내에 두기 어렵다. 이 문제에 대해 정부가 작년에 내놓은 정책이 정년 연장인데 임금피크제 등 보완책 없이 도입한다고 해서 노사갈등만 키워놨다. 세 번째는 일자리 문제다. 현 경제구조에서 필요한 건 신축적이고도 유연한 일자리다. 고학력 여성인력의 경력단절 현상이 심각하지 않나.”
▷2년 내 정부가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게 가능한가.
“어렵더라도 일단 시작해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는데 현 정부는 작년 1년을 경제민주화로 보냈다. 문제는 앞으로 몇년간 1% 대 99%의 갈등이 계속될 것이란 점이다. 우리 사회엔 노사 갈등 등 ‘지진대’가 너무 많다. 지금 경제 체질을 개선하지 않으면 세계 경제가 갑작스러운 호황을 맞고, 한국이 그 호황의 뒷바람을 타는 행운이 없는 한 우리 경제는 뒷걸음질칠 수밖에 없다.”
▷한경연 얘기를 해보자. 한국엔 왜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같은 싱크탱크가 없는 건가.
“두 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먼저 재정 독립이다. 브루킹스나 헤리티지는 안정적 운영에 필요한 기금이 조성돼있어 국가 전략에 대한 대안과 담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 두 번째는 ‘사람’이다. 브루킹스와 헤리티지는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전직 및 예비 고위직 관료가 많이 몸 담는다. 그런데 한국은 정반대다. 나도 역량있는 정부 관료 출신을 영입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는데 다들 손사래 쳤다. 나중에 고위직에 오를 때를 대비해 그런 이력을 갖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
▷대학강단 복귀 뒤 활동 계획은.
“벼랑 끝에 처한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는 전략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 또 진영논리를 극복할 수 있는 갈등관리·신뢰구축 방안도 모색하려고 한다. 대표적인 게 복지다. 많은 사람이 스웨덴을 한국이 닮아야 할 복지모델로 여긴다. 그런데 간과한 게 있다. 스웨덴은 원래부터 경제가 굉장히 강한 나라였기에 복지국가가 가능했다는 점이다. 그런 스웨덴도 과도한 복지 탓에 경제가 거덜 난 적이 있다. 지금껏 우리가 겪은 복지 논란은 맛보기일 뿐이다. 앞으로 더 심각한 논쟁이 있을 것이다.”
■ 최병일 전 원장은
한국 자유주의 경제학계를 대표하는 학자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딴 뒤 1997년부터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실천형 학자다. 대학 강단에만 머물지 않고 정부부처, 시민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등 현장 감각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0년대에는 당시 체신부 장관 자문관,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을 맡아 한국의 대외 통상 협상을 주도했다. 1990년 우루과이라운드 서비스협상 한국 대표, 1997년 세계무역기구(WTO) 통신기본협상 수석대표를 맡았으며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때도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2004년부터 2011년까지는 바른사회 시민회의 사무총장과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했고, 이후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도 맡는 등 보수 시민단체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2007년부터 이대 국제대학원장으로 재직하던 그는 2011년 12월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 요청으로 한국경제연구원장으로 자리를 옮겨 2년간 재계의 대표 싱크탱크를 이끌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