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떼쓰는 노인들? 갈등 조정하는 사회의 어른으로 남고싶어"
“비결이랄 게 있나요. 그저 노인들의 자존심을 세워줬을 뿐입니다. 노인이 그저 부양받는 존재가 아닌 사회를 책임지는 어른이 되길 원한 것이라고 봅니다.”

국회의원 출신 경쟁자 세 명을 제치고 대한노인회장 재선에 성공한 이심 회장(75·사진)의 말이다. 이 회장은 지난 7일 서울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제16대 대한노인회장 선거에서 대의원 277명 중 유효표(269표)의 61.7%(166표)를 얻어 당선했다. 경쟁자는 4선 의원 출신인 안동선(79·9표), 3선의 김호일(72·48표), 2선의 김성순(75·44표) 전 의원 등이었다. 대한노인회는 전국 6만2000여곳의 경로당에 등록된 65세 이상 노인 260만명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예상 못한 ‘압승’을 거둔 이 회장을 최근 서울 효창동 대한노인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한 달에 얼마씩 연금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사람들에게 그에 맞는 대우를 해줘야 합니다. 초고령사회니 뭐니 하면서 노인들을 나라 곳간 축내는 골칫거리로만 여겨서는 한국의 미래도 밝을 수 없습니다. 노인들은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고 떼쓰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물론 노인들도 사회의 ‘어른’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겠지요.”

이 회장은 말하는 ‘어른 역할’은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 노인들이 솔선수범하는 것이다. 실제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직후 회원들로부터 1000원씩을 걷어 5억원의 성금을 모아 모금운동에 불을 지폈다. 2011년에는 제주도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을 위해 ‘회원 260만명 전화 한통 캠페인’을 펼쳤고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100만명 서명운동도 벌였다.

에스콰이어 상무, 공인중개사협회장, 잡지협회장 등을 거쳐 2005년 노년시대신문을 발행하며 대한노인회와 인연을 맺은 이 회장. 그가 이번 선거에서 내놓은 슬로건은 ‘노(老)-노(老) 케어’다. 집안에 있는 외롭고 아픈 노인을 경로당으로 불러내 건강한 노인이 이들을 돌보게 하자는 캠페인이다. 고령화 사회에서 젊은이들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노인들 자신도 활기찬 노년을 보낼 수 있는 해법이라는 게 이 회장의 설명이다.

“지난해 이중근 부영 회장이 내놓은 5억원을 가지고 시범사업을 했는데 성과가 놀라웠습니다. 경로당 노인들이 홀몸노인을 찾아가 말동무도 하고, 목욕도 시켜주고 하는 작은 봉사였지만 봉사를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삶이 달라졌어요.”

올해부터 본격적인 ‘노-노 케어’ 사업 추진을 위해 확보한 예산은 103억원. 이 회장은 경로당에 대한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왕년에 잘나갔던 사람들은 ‘내가 경로당에 왜 나가느냐’고 하는데 틀린 얘기예요. 돈 많고 출세한 사람일수록 경로당에 나와야 합니다. 여유 있는 사람이 5만원어치 간식을 사면 모두가 즐겁고, 잘나갔던 사람이 성공담을 들려주면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으쓱해지거든요. 모두가 행복해지는 거죠. 이명박 전 대통령, 강창희 국회의장, 정운찬 전 총리도 경로당에 나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