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텃세
6년 전 세계피겨선수권대회 때도 그랬다. 고관절 부상으로 진통제를 맞고 출전한 김연아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연기를 펼쳤지만 동메달로 밀려났다. 장내에서 심판들을 비꼬는 ‘우~’하는 소리가 진동했다. 2011년 모스크바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심판들의 ‘견제구’ 때문에 안타까운 2위에 머물러야 했다.

이번 소치올림픽에서는 더했다. 심판 9명 가운데 한 명은 나가노올림픽 때 판정 조작으로 1년 자격정지를 받은 우크라이나 심판이고, 또 한 명은 러시아 피겨스케이팅협회장의 부인이었다. 러시아의 텃세와 편파 판정은 도를 넘었다. 이 종목에서 한 번도 금메달을 따지 못했으니 속이 탔을 만도 하다. 그들은 김연아가 미세한 실수라도 저지르길 바랐지만 김연아는 완벽했다.

심판들의 편파 판정은 처음부터 작심한 듯했다. ‘피겨 전설’ 카타리나 비트가 “이해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해 토론 없이 지나가서는 안 된다”며 항의할 정도였다. “소치가 수치스럽다”는 말이 전 세계에서 터져 나왔다.

깨끗한 연기를 펼치고도 홈텃세에 메달을 뺏긴 김연아는 놀랍게도 편안한 표정이었다. 그는 “최선을 다했고 보여드릴 수 있는 만큼 보여드려 후련하다”며 웃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여왕다웠다. 후배 김해진과 박소연을 챙기고 “늦은 밤에 경기가 있어 잘 못 주무셨을 것”이라며 국민을 배려하기도 했다. ‘명품 연기’에 완벽한 매너까지 역시 ‘피겨 퀸’이었다.

출전 선수 24명 가운데 가장 뒤에 연기한 그는 애절한 탱고곡 ‘아디오스 노니노’에 맞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선수로서 최후의 스케이팅이었고, 두 번째이자 마지막 올림픽 무대였다. 첫 성인 무대에서 보여준 게 매혹적인 ‘록산느의 탱고’처럼 은퇴 무대에서 들려준 탱고 ‘아디오스 노니노’의 선율도 아름다웠다.

흥분한 팬들이 국제빙상연맹(ISU)에 재심을 청원하기 위해 펼치는 서명운동에 100만명 이상이 몰렸다고 한다. 그 심정도 이해가 간다. 피겨 불모의 땅에서 눈물겨운 노력으로 세계 챔피언이 되고 최악의 조건에서 마지막 도전에 나선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이리라. 그러나 어쩌랴. ISU 회장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인물이라니.

승부의 세계는 항상 냉정하다. 텃세 시비도 늘 있게 마련이다. 그 정도가 심했다 해도 결과는 결과인 것이다. 이를 극복하는 법은 김연아처럼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면서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게 곧 자신을 이기는 길이기도 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