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년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명품시계 브랜드 파네라이가 이탈리아의 천재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에 헌정하는 의미로 제작한 ‘파네라이 주피테리움(Panerai Jupiterium)’은 이 사실을 가장 명쾌하게 입증하는 걸작으로 꼽을 만하다.
파네라이가 지난 18일 싱가포르에서 아시아 주요 언론을 초청, 주피테리움을 전시한 자리에 한국경제신문이 다녀왔다.
싱가포르의 쇼핑거리 오차드 로드에 있는 파네라이 매장 VIP룸에서 모습을 드러낸 주피테리움은 ‘시간을 넘어 우주를 담아낸 시계’라는 점에서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갈릴레이에 헌정한 ‘천체시계’
파네라이가 2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0년 완성한 주피테리움은 단 세 개뿐이다. 그중 하나는 이탈리아 파네라이 본사 박물관에 보관 중이고, 다른 하나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박물관에 기증돼 있다. 마지막 하나가 이번에 전시된 작품이다.
파네라이 주피테리움은 작은 손목시계가 아니다. 폭 75㎝, 높이 86㎝의 유리상자 안에 들어 있는 천체시계다. 무게가 110㎏에 달하고 부품은 무려 1532개가 쓰였다.
구체(球體)의 중심에 지구가 놓여 있고 그 주위로 해, 달, 목성이 움직이는 구조다. 지구를 한가운데 놓은 것은 당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천동설을 토대로 한 것이다.
지구·태양·달…구 표면엔 반짝이는 야광 별자리
구의 표면에는 야광으로 된 별자리가 장식돼 실제 별처럼 빛을 발한다. 밤하늘은 지구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23시간56분을 주기로 자전하도록 설계돼 있다.
목성 주변에 ‘이오’ ‘유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라는 이름이 붙은 네 개의 위성이 돌아가는 모습도 눈에 띈다. 목성엔 실제로는 더 많은 위성이 있지만 굳이 네 개만 재현한 이유는 갈릴레이 때문이다. 그가 1610년 자신의 발명품인 망원경으로 목성을 보며 처음 발견했던 위성이 이들 네 개뿐이었다는 것.
모든 천체는 무브먼트(시계의 핵심 부품인 동력장치)에서 동력을 얻어 24시간 회전한다. 이 시계는 태엽을 감아 작동시킨다. 시계 아래쪽에 있는 큼지막한 태엽을 끝까지 한 번 돌리면 40일 동안 돌아간다.
모든 천체가 제각각 다른 주기로 회전
다른 명품시계 브랜드에서도 우주를 모티브로 한 천체시계를 만든 적은 있지만, 파네라이의 주피테리움이 특별한 이유는 모든 천체가 제각각 다른 주기로 회전하기 때문이다. 달은 27.32일, 태양은 365.26일 주기로 지구 주위를 공전하고 목성은 11.87년을 주기로 태양 주위를 돈다. 목성 위성의 회전 주기도 모두 달라 이오는 1.8일, 유로파는 3.6일, 칼리스토는 7.2일, 가니메데는 16.7일이다.
주피테리움의 아래쪽에는 날짜, 요일, 월, 연도를 표시하는 달력 창이 있다. 2100년까지는 윤년 등을 자동으로 인식해 날짜를 맞추기 때문에 따로 조정할 필요가 없다.
검정 바탕에 눈에 띄는 ‘야광 시곗바늘’
그 아래에는 시, 분, 초 등을 보여주는 대형 시간 창이 있다. 검정 바탕에 야광 시곗바늘로 시간을 뚜렷하게 표시하는 전형적인 ‘파네라이 스타일’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파네라이의 아시아퍼시픽 커뮤니케이션 디렉터인 그레이스 응은 “파네라이 주피테리움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혁신적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오늘날 이런 특별한 천체시계를 제작할 수 있는 것은 근대 과학의 눈부신 발달 덕분이고, 그 계기를 만든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현대의 명품시계 브랜드들이 ‘경의’를 표할 만한 대과학자라고 강조했다.
싱가포르=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