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나의 멘토 산방(山房)
산방에 들어서는 순간 익숙한 것들과 잠시 이별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곳에 스스로 유폐된다. 어제를 노둣돌 삼아 내일을 향해 내달려가던 정신과 육체를 내려놓는 것이다. 한 평 남짓한 방에 들어 정좌하면 절로 수행자가 된다. 세상 번뇌는 촛불 너머로 밀려나고, 절연한 고독감에 정신이 맑게 깨어난다.

산방은 강원 정선의 깊은 산골에 있다. 몇 해 전에 우연찮게 처음 찾았던 곳인데,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추슬러보는 맛에 이끌려 멘토로 삼고 있다. 꼭 사람만 멘토는 아니잖은가. 그곳에 가면 수행의 도반(道伴)인 산방지기 부부가 있다. 서로 닮은 그들은 자연의학자이자 수련인으로 건강수행법을 연구하고 가르친다. 편리 추구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생활 패턴에서 비롯되는 온갖 질병에서 벗어나도록 자연에서 터득한 지혜를 전수해주는데, 처음엔 적이 낯설고 고된 수련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이곳 산방은 건강수행의 근본으로 ‘생명온도’를 강조한다. 뱃속의 장기들이 생명온도를 잃어 차가워지면 몸은 ‘병마의 집’이 되고, 뱃속이 따뜻해 기운이 넘치면 ‘참나의 집’이 된다는 것. 생명온도를 높이기 위해 뜨거운 물을 마시면서 단식을 하고, 장작불을 지펴 몸을 덥힌다. 가장 단순한 숨쉬기도 이곳에선 룰에 따라야 한다. 무릎을 오므리고 등을 편 자세로 앉아 숨을 길게 토하면서 기운을 아랫배까지 보내 오장육부의 활력을 높인다. 막힌 경락을 푸는 법도 배운다. 경락봉으로 등굴리기를 하면 정신이 해맑아지고 묵은 체기가 내려가 몸이 가뿐해진다.

이런 건강수행법을 몸에 익히면 좋지만 서툴러도 그만이다. 적막강산에 한 점이 되어 자연의 순리를 접해보는 것만으로도 산방 체험은 값지다. 숨 가쁜 일상을 벗어나 며칠이라도 문명과 단절된 오지에서 무념무상으로 지내다보면 평소에 듣지 못했던 내면의 소리가 들린다. 살아온 날들과 주변도 새삼 돌아보게 된다. “비어 있어야 쓸모가 있다(當無有用)”는 노자의 말처럼 더 큰 쓸모를 위해 비워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한다.

너나 할 것 없이 현대인은 바쁘고 고단하다. 그래서 가끔은 일상탈출이 필요하다. 내면의 진실과 마주하면서 묵은 생각들을 걸러내고 비워내야 새로운 기운이 깃들고 지친 몸도 생기를 되찾을 수 있다. 경칩이 다가오니 봄기운이 완연하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정신과 육체에 청량한 봄기운을 불어넣고 싶다면, 어디든 호젓한 산방을 찾아 떠나보시길.

오영호 < KOTRA 사장 youngho5@kotra.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