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설 자리 잃는 미국 '정치 노조'
미국 테네시주의 채터누가에 있는 폭스바겐 공장 근로자들의 ‘노조 설립 반대’가 정치이슈로 번지고 있다.

밥 킹 미국자동차노조연합(UAW) 회장은 지난 주말 “정치인들의 부당한 선거 개입이 있었다”며 미국노동관계위원회(NLRB)에 재투표 허가를 요청했다. 폭스바겐 근로자들이 지난 14일 찬성 626, 반대 712로 UAW 지부 설립을 부결시킨 데는 밥 코커 테네시주 연방 상원의원(공화당) 등의 회유와 압박이 있었다는 것이다. 코커 의원은 “UAW 지부가 들어서면 회사 측이 생산라인을 추가로 늘리지 않을 것”이라고 근로자들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의회 의원들도 노조 설립 시 세금감면 등의 각종 인센티브가 줄어들 것이라고 위협했다는 게 UAW의 주장이다.

이에 코커 의원은 “UAW가 폭스바겐 근로자와 이들의 일터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조직에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코커 의원은 채터누가 시장으로 일할 때 폭스바겐 공장을 직접 유치한 인물이다.

NLRB는 조만간 UAW의 재투표 요청을 심리할 예정이다. 만약 코커 의원 등의 발언이 노동법 위반으로 판정되면 폭스바겐 근로자들은 다시 투표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며칠 전 “노조를 반대하는 사람(공화당 의원)은 미국 노동자들이 아니라 독일 기업(폭스바겐)의 주주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발언한 사실이 공개됐다. 민주당 의원들과의 비공개 만남에서 한 ‘사적 발언’을 민주당 측이 의도적으로 언론에 흘린 것이다.

미국 노조의 정치 기부금 가운데 90%는 민주당 후보에게 간다. UAW는 2012년 대통령 선거 때 1200만달러를 민주당에 기부했지만 공화당엔 한 푼도 기부하지 않았다. 미국 노조의 정치세력화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하지만 폭스바겐 근로자들이 바라는 것은 보다 안정된 일자리와 임금, 그리고 복리후생 개선이다. 이들이 UAW를 거부한 것은 노조가 정치단체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현대·기아자동차 노조원들도 민주노총의 국민총파업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여기저기서 ‘정치 노조’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장진모 워싱턴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