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으로 재미를 봤던 남미의 좌파 정권들이 포퓰리즘의 역습에 흔들리고 있다. ‘대부’ 베네수엘라 정부는 50%가 넘는 물가상승률, 치솟는 범죄율 등 민생 현안을 해결하지 못하며 국민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재정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아르헨티나는 2년 전 억지로 국유화한 스페인 투자기업에 50억달러(약 5조3000억원)라는 거금을 물어주게 됐다. ‘중도 좌파’ 정부인 브라질은 올해 성장률이 2%도 안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남미 포퓰리즘의 종언(終焉)’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외신들에 따르면 25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는 바리케이드를 치고 불을 지르는 등 거센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다. 3주째다. 정부가 시위대를 ‘파시스트’로 규정하며 강경 진압해 이날까지 13명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산층이 주도하던 시위가 빈민층에까지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때부터 포퓰리즘의 지지 기반이던 빈민층마저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엄격한 수입 규제 등 포퓰리즘 정책 결과로 공식 물가상승률이 50%가 넘고 의약품은 물론 화장지까지 부족한 상황이 되자 극빈층도 정부에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곳간이 바닥을 드러냄에 따라 원유보조금을 줄이기로 한 게 국민의 저항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원유 수출만으로는 돈벌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당인 사회당 내에서조차 분열상을 보이고 있다.

서부 타치라주의 호세 비엘마 주지사는 “평화롭게 시위하는 시민을 공격해선 안 된다”며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다. 과거엔 볼 수 없던 상황이라는 게 FT의 설명이다.

최근 외환보유액이 급감하며 한푼이 아쉬운 아르헨티나는 50억달러를 날리게 됐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2012년 강제 국유화한 스페인 에너지기업 렙솔의 자회사 YPF에 대한 배상금으로 50억달러를 물어주기로 이날 결정했다. 2년 전에는 “국유화는 국민의 승리고 배상금도 우리 마음대로 정할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렙솔이 100억달러 규모의 소송을 걸자 서둘러 꼬리를 내린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외환보유액은 지난 1월 현재 약 270억달러밖에 남아 있지 않다.

베네수엘라 신문 엘우니베르살의 다니엘 로드리게스 칼럼니스트는 이날 FT 기고에서 “남미가 포퓰리즘 장단에 추던 춤을 멈췄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고가 바닥난 베네수엘라는 더 이상 남미 사회주의 국가들의 대부 역할을 할 수 없다”며 “볼리비아 에콰도르 쿠바 등 베네수엘라를 모델로 삼던 국가들도 흔들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합리적 사회주의’를 내세우는 브라질 성장률은 올해 2%대에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는 물론 주요 20개국(G20) 중 가장 낮은 수준”이라며 “페루 칠레 멕시코 등 시장경제를 선택한 나라들의 건실한 경제 상황과 대조된다”고 지적했다.

포퓰리즘의 역풍을 맞은 곳은 남미뿐만이 아니다. 태국에선 최근 정부가 쌀 수매 보조금을 중단하자 수혜자였던 농민까지 반정부 시위에 가세하고 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