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관객 1000만명에 육박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국내관객 1000만명에 육박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지난 6일 개봉한 애니메이션 ‘레고 무비’는 미국에서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26일 현재 전 세계에서 2억7000만달러의 관람료 매출을 기록했다. 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는 기대 이상의 흥행 성적에 고무돼 속편 제작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같은 기간 한국에서는 불과 20만명, 13억여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전 세계적으로도 흥행 순위 20위권 밖이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국내에서 1000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올 들어 미국에서 흥행 1위에 올랐던 두 애니메이션 ‘겨울왕국’과 ‘레고무비’가 국내에서 이처럼 상반된 관객 동원 양상을 보인 것은 배급사 측 흥행 수익금 배분율 때문이다. 디즈니는 수익금 배분율을 하향 조정한 극장 측의 방침을 받아들여 서울에서 개봉했지만 워너는 이를 거부하고 서울에서 ‘레고 무비’를 개봉하지 않아 흥행에서 참패했다. 애니메이션 관람객이 상대적으로 많아 입소문을 주도하는 서울의 메가박스에서만 상영할 뿐 1, 2위 극장체인인 CGV와 롯데시네마에서 상영하지 않은 게 큰 이유다. 일반적으로 한국과 미국의 흥행 추이가 비슷한 점을 고려하면 워너의 전략은 실패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관객 20만명에 그친 ‘레고 무비’.
국내관객 20만명에 그친 ‘레고 무비’.
워너는 지난해 서울 지역 흥행 수익배분율을 기존 6(미국 직배사) 대 4(극장)에서 CGV는 5 대 5, 롯데시네마는 5.5(직배사) 대 4.5(극장)로 하향 조정한 데 대해 반발해 서울 상영을 거부했다. 워너는 판타지 대작인 ‘호빗2’와 ‘토르2’도 서울지역 CGV 등에서 제때 개봉하지 않아 흥행이 부진했다.

CGV와 롯데시네마 측은 직배사의 흥행수익 배분율을 낮춘 것에 대해 “지난 30여년간 국내에서 누려온 직배사의 특혜를 없애고 정상화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한국영화 수익배분율은 지난 30여년간 서울에서 5(배급사) 대 5(극장)였다가 이번에 5.5(배급사) 대 4.5(극장)로 상향 조정했다. 과거 할리우드 대작의 경쟁력이 압도적인 상황에서는 극장들이 어쩔 수 없이 직배사의 특혜 요구를 받아들였지만 지난해 한국영화 점유율이 60%를 기록한 마당에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다는 얘기다.

영화 투자자, 제작 관계자, 프로듀서 등 국내 영화인들도 배분율 조정을 ‘정상화 조치’로 환영하고 있다. 지난해 ‘더 테러 라이브’를 제작한 이춘연 씨네2000 대표 겸 영화인회 이사장은 “직배사가 한국에서 오랫동안 ‘대접’을 받았지만 더 이상 우월적 지위를 요구할 처지가 아니다”며 “워너는 전 세계 시장을 무대로 활동하는 만큼 한국시장에서도 책임감을 갖고 극장 측과 원만하게 타협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워너는 개봉이 예정된 대작들을 무기로 우월적 지위를 고집하고 있어 파행을 예고하고 있다. 올해 워너는 ‘300:제국의 부활’ ‘고질라’, 워쇼스키 남매의 ‘주피터 어센딩’, 톰 크루즈의 ‘엣지 오브 투모로우’,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터스텔라’ 등 화제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한 달에 두 편 정도 영화를 본다는 이진숙 씨(30·직장인)는 “워너브러더스가 한국에서 더 이상 특혜를 바라서는 안된다”며 “워너가 몽니를 계속 부린다면 시민들이 보이콧 여부를 논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