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학사모 쓴 안내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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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작년 12월 초 독일 슈피겔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마초, 냉혹한 폭군 이미지가 조작됐다고 보도해 푸틴 측이 발끈한 적이 있다. 슈피겔은 푸틴이 부모 사랑을 못 받고 자라 내성적이고, 가장 친한 친구가 래브라도 리트리버종(種) 맹도견(시각장애인 안내견)뿐이라는 러시아 칼럼니스트의 저서를 인용했다.
사실 안내견이라면 푸틴 아닌 그 누구라도 잘 따랐을 것이다. 안내견이 되는 과정은 개의 입장에선 쉽지 않은 일이다. 생후 7주짜리 강아지를 선별해 1년간 키우며 사회화시킨 뒤 6~8개월간 집중 훈련해 양성한다. 개의 본능을 억제하고, 스스로 위험을 판단해 주인의 명령을 거부할 수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안내견은 스트레스가 심해 대개 열 살이 넘으면 은퇴시킨다.
안내견이 본격 양성된 것은 1차 세계대전 이후다. 처음엔 셰퍼드가 이용됐지만 현재 안내견의 주종은 리트리버다. 영리하고 온순하며 인내심이 강해 어려운 훈련을 잘 소화한다. 리트리버라는 이름 자체가 ‘회수하다’라는 뜻의 retrieve에서 왔듯이, 주로 사냥한 짐승을 물어오는 조렵견(助獵犬)으로 길들여졌다.
캐나다 뉴펀들랜드가 원산인 래브라도 리트리버는 짧고 조밀한 털이 방수성이 좋아 찬바다에서 어망이나 물고기를 회수해오는 어부의 도우미였다. 그러다 영국에서 지뢰탐지견, 마약탐지견, 안내견, 경찰견 등 만능견으로 훈련시켰다. 스코틀랜드에서 개량한 황금색 골든 리트리버는 주로 새 사냥에 이용됐지만 요즘엔 안내견, 애완견으로 쓰인다.
안내견의 대표답게 리트리버는 일화가 많다. 9·11테러 때 세계무역센터 78층에 있던 시각장애인 마이클 힝슨은 안내견 로젤이 이끄는 대로 걸어내려와 목숨을 건졌다. 2011년 일본 홋카이도에선 팔순 할아버지와 세 살 손녀가 차가 전복돼 눈속에 묻혔지만 래브라도종 애완견이 혀로 핥고 감싸안아 하루 만에 무사히 구조됐다. 영국에선 안내견이 횡단보도 신호등을 조작해 화제가 됐다.
엊그제 성균관대와 숙명여대 졸업식에서 시각장애 주인과 나란히 학사모를 쓴 안내견들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4년간 주인의 눈이 돼 강의도 함께 들었으니 명예졸업장을 받을 만하다.
세계적으로 안내견 양성기관은 27개국에 84곳이 있고, 약 2만마리가 활동 중이지만 국내에는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한 곳뿐이다. 안내견이 필요한 시각장애인이 3000명에 달하는데 지난 20년간 고작 160여마리가 분양됐고, 현역은 60여마리에 불과한 실정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사실 안내견이라면 푸틴 아닌 그 누구라도 잘 따랐을 것이다. 안내견이 되는 과정은 개의 입장에선 쉽지 않은 일이다. 생후 7주짜리 강아지를 선별해 1년간 키우며 사회화시킨 뒤 6~8개월간 집중 훈련해 양성한다. 개의 본능을 억제하고, 스스로 위험을 판단해 주인의 명령을 거부할 수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안내견은 스트레스가 심해 대개 열 살이 넘으면 은퇴시킨다.
안내견이 본격 양성된 것은 1차 세계대전 이후다. 처음엔 셰퍼드가 이용됐지만 현재 안내견의 주종은 리트리버다. 영리하고 온순하며 인내심이 강해 어려운 훈련을 잘 소화한다. 리트리버라는 이름 자체가 ‘회수하다’라는 뜻의 retrieve에서 왔듯이, 주로 사냥한 짐승을 물어오는 조렵견(助獵犬)으로 길들여졌다.
캐나다 뉴펀들랜드가 원산인 래브라도 리트리버는 짧고 조밀한 털이 방수성이 좋아 찬바다에서 어망이나 물고기를 회수해오는 어부의 도우미였다. 그러다 영국에서 지뢰탐지견, 마약탐지견, 안내견, 경찰견 등 만능견으로 훈련시켰다. 스코틀랜드에서 개량한 황금색 골든 리트리버는 주로 새 사냥에 이용됐지만 요즘엔 안내견, 애완견으로 쓰인다.
안내견의 대표답게 리트리버는 일화가 많다. 9·11테러 때 세계무역센터 78층에 있던 시각장애인 마이클 힝슨은 안내견 로젤이 이끄는 대로 걸어내려와 목숨을 건졌다. 2011년 일본 홋카이도에선 팔순 할아버지와 세 살 손녀가 차가 전복돼 눈속에 묻혔지만 래브라도종 애완견이 혀로 핥고 감싸안아 하루 만에 무사히 구조됐다. 영국에선 안내견이 횡단보도 신호등을 조작해 화제가 됐다.
엊그제 성균관대와 숙명여대 졸업식에서 시각장애 주인과 나란히 학사모를 쓴 안내견들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4년간 주인의 눈이 돼 강의도 함께 들었으니 명예졸업장을 받을 만하다.
세계적으로 안내견 양성기관은 27개국에 84곳이 있고, 약 2만마리가 활동 중이지만 국내에는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한 곳뿐이다. 안내견이 필요한 시각장애인이 3000명에 달하는데 지난 20년간 고작 160여마리가 분양됐고, 현역은 60여마리에 불과한 실정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