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묶인 SK…투자 '잃어버린 4년' 되나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의 실형이 확정된 27일 SK그룹은 충격에 휩싸였다. 총수의 장기 부재 사태로 그룹 앞날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룹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는 판결이 나온 직후 김창근 의장 주재로 긴급회의를 열었지만 뾰족한 대책은 내놓지 못했다.

회의 뒤 SK는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리고,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며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은 그룹 회장 형제의 경영 공백 장기화가 본인들이 진두지휘한 대규모 신사업과 글로벌 사업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SK 관계자는 “각 계열사가 자율경영을 하면서 수펙스 산하 6개 위원회가 그룹 차원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기존 체제를 유지하게 될 것”이라면서도 “오너의 결정이 필요한 대규모 투자와 해외 사업은 당분간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통신 등 내수에 의존하는 사업구조를 에너지와 반도체 중심의 수출주도형으로 전환하려던 SK의 중장기 계획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SK가 추진해온 해외 사업은 자원개발, 인프라 구축 등 기반 산업 중심이어서 오너와 해당 국가 최고위층 간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다.
날개 묶인 SK…투자 '잃어버린 4년' 되나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지난달 중국 우한에서 생산을 시작한 SK와 시노펙의 합작 에틸렌 공장은 최 회장이 7년 동안 공을 들여 성사시킨 사업”이라며 “오너가 해외 사업을 직접 챙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당장 그룹 내에서는 인수합병(M&A) 등 굵직한 해외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될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석유사업을 총괄하는 SK이노베이션은 2011년 브라질 원유 광구를 머스크에 팔고 받은 24억달러(약 2조5680억원)로 신규 자원개발을 추진 중이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해외 경쟁사들이 최근 멕시코 등 중남미 지역에서 자원개발에 나서는 것을 보면서도 참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동남아 지역에서 신사업을 찾으려던 계획도 불투명하다. 최 회장은 2011년 태국 싱가포르 등에서 현지 정·관계 인사들을 만나 석유저장설비, 건설, 통신, 온라인 시장 등에 진출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지난해 1월 최 회장 구속 이후 후속 작업이 올스톱됐다. 유럽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 추진한 터키 사업도 지지부진하다. 최 회장은 터키 유력 기업인 도우쉬그룹과 1억달러 규모의 공동 펀드를 설립했지만 인터넷 상거래 사업 정도만 진행 중일 뿐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

대규모 추가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사업에 대한 우려도 크다. 최 회장의 장기 부재로 대규모 투자가 신속하게 이뤄지지 못하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박해영/배석준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