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종횡사해’ 등 영화 속에 나오는 미술품 도둑들은 하나같이 지적이고 세련되고 화려하다. 사랑과 낭만을 알고 유머감각까지 갖췄다. 이들은 미술품에 관한 남다른 조예를 바탕으로 첨단장비를 동원해 ‘그림 훔치기’ 놀이를 즐긴다. 엄연한 절도범인데도 이들에 대한 시각은 너그럽고 관대하다. 결말은 대부분 해피엔딩이다. 실제 미술품 도난의 세계는 어떨까.

[책마을] 그 많던 그림들은 어디로 갔을까?
《사라진 그림들의 인터뷰》는 인터폴과 유네스코가 마약, 돈세탁, 무기에 이어 세상에서 네 번째로 큰 암거래 시장으로 꼽은 도난 미술품 거래의 어둡고 은밀한 세계를 파헤친다. 캐나다 잡지사 기자로 일하던 중 미술품 도둑과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도난 미술품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된 저자가 2003년부터 8년간 취재한 기록을 재구성했다.

추리소설을 읽는 것 같다. 저자는 탐정과 같이 세계적인 규모로 이뤄지는 도난 미술품 거래의 거대한 메커니즘을 치밀하고 끈기 있게 파고든다. 로스앤젤레스 경찰국 형사, 캐나다 문화재법 전문 변호사, 영국 브라이튼 출신의 미술품 도둑, 미 연방수사국(FBI) 수사요원과 미술범죄팀 매니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의 보안팀장 등 저자가 인터뷰한 사람들이 주요 등장인물로 나온다. 로스앤젤레스와 뉴욕, 퀘벡, 런던, 카이로 등을 오가며 이들이 관여하거나 겪은 다양한 미술품 도난 현장과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건 등이 눈앞에 실제 펼쳐지는 것처럼 생생하고 긴박감 있게 그려진다.

저자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미술품 범죄의 특수성과 인류 문화유산 훼손의 심각성을 깊이 있게 전달하며 할리우드 영화가 만들어낸 낭만적인 이미지를 걷어낸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