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번째 맞는 3·1절이다. 33인의 지도자들과 유관순 등 학생 청년, 그리고 일반 민중이 1919년 3월1일을 기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해 만세를 불렀던 동아시아 민족사의 기념비적인 날이다. 3·1절은 보통 일본 식민지배와의 관계 속에서 회고되고 기념되는 그런 날로 인식된다. 각종 행사와 기념사들조차 대부분 일제 만행을 규탄하고 만세를 재연하는 그런 식으로 귀결된다. 한·일 관계가 극도로 냉각된 올해도 패턴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는 자기정체성이 처음으로 형성되고 근대 국민국가를 향해 첫발을 내디딘 그 출발점이었던 날이 바로 3·1절이다. 사실 중세 이전에는 국민의식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할 수 없어서 오로지 신민(臣民)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던 한국인들이 일제라는 타자의 지배에 직면해 비로소 민족과 국민이라는 전혀 새로운 개념에 눈을 떴던 것이다. 이제 조선왕조의 부활이 아니라 근대 국민국가를 향한 긴 여정이 시작됐다.

같은 해 4월 사상 처음으로 공화정을 정치체제로 내세운 상하이 임시정부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중심으로 출범했고 그 활동들의 결과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으로 이어졌다. 물론 3·1운동은 중국 5·4운동의 기폭제도 되는 등 동아시아 전역에 역사적 충격을 주었다. 민족의 탄생이라는 면에서 3·1운동을 기억하게 되면 대한민국의 오늘에 이르는 지난 세월의 여정이 새로운 의미로 되살아난다. 단순히 대(對)일본 만세운동으로만 95년 전 오늘을 기억할 수는 없다. 한국인의 지난 100여년 여정이 현해탄적 범주에 머물 수는 없지 않나. 더구나 일본과의 투쟁이 한국인의 전부는 아니다. 95년 전에 태어난 첫 한국인들의 만세소리가 들린다. 이제 세계시민적 성숙으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