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과 날줄] 감자 한 알에 담긴 농부들의 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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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농사는 순전히 등짐농사
아무리 먹고살기가 팍팍해도
감자까지 비싸다고 하진말자"
이순원 < 소설가 lsw8399@hanmail.net >
아무리 먹고살기가 팍팍해도
감자까지 비싸다고 하진말자"
이순원 < 소설가 lsw8399@hanmail.net >
어제 길가에서 파는 감자 무더기를 보았다. 막 밭에서 캐어온 듯 아직 마르지 않은 검은 흙이 묻어 있는 감자였다. 나는 어릴 때 대관령 아래에서 살던 어린 시절만 생각하고 저 감자는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감자가 아니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몇 해 전까지 강원도에서 농사를 지으셨던 일행 한 분이 비닐하우스 감자가 아니라 노지(맨밭)감자라고 했다. 아니 지금 어떻게 노지감자가 나오느냐고 하니까, 강원도 감자가 아니라 제주도 감자라고 했다. 강원도 감자는 봄에 씨를 내는데 비해 제주도 감자는 지난해 가을에 씨를 내어 밭에서 겨울을 보낸 다음 봄에 수확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우리나라 국토가 좁다고 하지만 감자씨를 봄에 심는 곳이 있고 가을에 심는 곳이 있다면 그렇게 좁은 땅만도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하루종일 어떤 화두처럼 감자에 대한 생각을 했다. 오랜 얘기지만 대관령 부근의 사람들은 예전에 학교 다닐 때 농촌에 사는 아이들은 대부분 감자를 팔아서 여름 학비를 냈다. 지금은 농사법이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 같으면 요즘이 바로 밭에다가 감자거름을 한창 낼 때이다. 겨우내 매일 외양간 바닥에 깔아주었던 짚과 두엄을 한군데 모아 쌓아두었다가 그걸 봄에 감자밭으로 져 날랐다.
내 기억 속의 감자농사는 순전히 등짐농사이고 지게농사였다. 감자 열 가마니를 수확하는 밭이라면 그 밭에 져 날라야 하는 감자거름은 그것의 두 배가 넘었다. 그러니까 감자 열 가마니 수확을 하자면, 봄부터 감자거름을 스무 지게 이상 산 너머 밭에 져 날라야 하는 것이다.
또 감자농사는 눈을 딴 감자씨를 심는 작업에서부터 수확하기까지 들이는 품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 어느 작물보다 많은 퇴비를 줘야 하고 밭도 기본적으로 두 번은 매 주어야 한다. 처음 맬 때는 풀을 잡고, 두 번째는 풀을 잡으면서 열매가 땅속에서 굵어지라고 북을 주는 것이다.
수확 역시 한여름의 고된 작업이다. 기온이 30도 이상을 오르내리는 양지에서 땅에서는 후끈 지열이 올라오고, 머리 위에선 땡볕이 말 그대로 작렬하듯 쏟아질 때 온몸에 땀을 줄줄 흘리며 한 포기 한 포기 호미로 캐내야 한다. 도회지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도 방학 때 집에 내려가면 한여름 감자만 캐다 돌아온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지금도 여름이면 강릉 지방 아주머니들이 대관령 감자밭에 품을 팔러 다닌다. 매일 새벽 봉고차가 나오는데, 노동 강도에 비해 품값은 싸다. 여름 긴 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일하고 일당은 5만원이다. 도시에서는 그 돈을 받고 그 정도 강도의 노동을 할 수가 없다. 노동 강도로 따지면 감자캐기와 집안일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감자밭 주인으로서는 품값을 더 줄 수도 없다. 해마다 보면 감자값이 말 그대로 감자값이기 때문이다.
이제 곧 충청도에서도 경상도에서도 강원도에서도 감자를 심을 것이다. 어느 정도 자라면 중간상들이 와서 밭으로 산다. 다행히 감자값이 괜찮으면 아무 군소리 없이 파 가지만 폭락하기라도 하면 애쓰게 지은 농사를 밭에 그냥 두어 장마철에 썩혀버릴 수도 있다.
어제 길가에서 보았던 제주도 감자 역시 좋은 값이 아니었다. 저것이 거리로 팔려나올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감자 한 알 한 알에 배었겠는가. 알면서도 우리는 시장에서 마치 입에 붙은 습관처럼 왜 이렇게 비싸냐고 말한다. 어제 노지감자를 사가던 아주머니도 그랬다.
아무리 살기가 팍팍하고 어려워도 길가의 돌덩이 다음으로 헐한 값으로 굴러다니는 저 감자까지 비싸다고 말하면 안 된다. 그것 한 알이 우리 곁에 오기까지 농부는 저 감자만큼의 땀을 흘렸다. 농사법은 발전해도 농사를 지으며 사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다.
이순원 < 소설가 lsw8399@hanmail.net >
그러자 몇 해 전까지 강원도에서 농사를 지으셨던 일행 한 분이 비닐하우스 감자가 아니라 노지(맨밭)감자라고 했다. 아니 지금 어떻게 노지감자가 나오느냐고 하니까, 강원도 감자가 아니라 제주도 감자라고 했다. 강원도 감자는 봄에 씨를 내는데 비해 제주도 감자는 지난해 가을에 씨를 내어 밭에서 겨울을 보낸 다음 봄에 수확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우리나라 국토가 좁다고 하지만 감자씨를 봄에 심는 곳이 있고 가을에 심는 곳이 있다면 그렇게 좁은 땅만도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하루종일 어떤 화두처럼 감자에 대한 생각을 했다. 오랜 얘기지만 대관령 부근의 사람들은 예전에 학교 다닐 때 농촌에 사는 아이들은 대부분 감자를 팔아서 여름 학비를 냈다. 지금은 농사법이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 같으면 요즘이 바로 밭에다가 감자거름을 한창 낼 때이다. 겨우내 매일 외양간 바닥에 깔아주었던 짚과 두엄을 한군데 모아 쌓아두었다가 그걸 봄에 감자밭으로 져 날랐다.
내 기억 속의 감자농사는 순전히 등짐농사이고 지게농사였다. 감자 열 가마니를 수확하는 밭이라면 그 밭에 져 날라야 하는 감자거름은 그것의 두 배가 넘었다. 그러니까 감자 열 가마니 수확을 하자면, 봄부터 감자거름을 스무 지게 이상 산 너머 밭에 져 날라야 하는 것이다.
또 감자농사는 눈을 딴 감자씨를 심는 작업에서부터 수확하기까지 들이는 품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 어느 작물보다 많은 퇴비를 줘야 하고 밭도 기본적으로 두 번은 매 주어야 한다. 처음 맬 때는 풀을 잡고, 두 번째는 풀을 잡으면서 열매가 땅속에서 굵어지라고 북을 주는 것이다.
수확 역시 한여름의 고된 작업이다. 기온이 30도 이상을 오르내리는 양지에서 땅에서는 후끈 지열이 올라오고, 머리 위에선 땡볕이 말 그대로 작렬하듯 쏟아질 때 온몸에 땀을 줄줄 흘리며 한 포기 한 포기 호미로 캐내야 한다. 도회지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도 방학 때 집에 내려가면 한여름 감자만 캐다 돌아온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지금도 여름이면 강릉 지방 아주머니들이 대관령 감자밭에 품을 팔러 다닌다. 매일 새벽 봉고차가 나오는데, 노동 강도에 비해 품값은 싸다. 여름 긴 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일하고 일당은 5만원이다. 도시에서는 그 돈을 받고 그 정도 강도의 노동을 할 수가 없다. 노동 강도로 따지면 감자캐기와 집안일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감자밭 주인으로서는 품값을 더 줄 수도 없다. 해마다 보면 감자값이 말 그대로 감자값이기 때문이다.
이제 곧 충청도에서도 경상도에서도 강원도에서도 감자를 심을 것이다. 어느 정도 자라면 중간상들이 와서 밭으로 산다. 다행히 감자값이 괜찮으면 아무 군소리 없이 파 가지만 폭락하기라도 하면 애쓰게 지은 농사를 밭에 그냥 두어 장마철에 썩혀버릴 수도 있다.
어제 길가에서 보았던 제주도 감자 역시 좋은 값이 아니었다. 저것이 거리로 팔려나올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감자 한 알 한 알에 배었겠는가. 알면서도 우리는 시장에서 마치 입에 붙은 습관처럼 왜 이렇게 비싸냐고 말한다. 어제 노지감자를 사가던 아주머니도 그랬다.
아무리 살기가 팍팍하고 어려워도 길가의 돌덩이 다음으로 헐한 값으로 굴러다니는 저 감자까지 비싸다고 말하면 안 된다. 그것 한 알이 우리 곁에 오기까지 농부는 저 감자만큼의 땀을 흘렸다. 농사법은 발전해도 농사를 지으며 사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다.
이순원 < 소설가 lsw8399@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