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말기, 남북 경
[한경데스크] 북한은 과연 달라졌나
협추진위원회에 참여했던 당시 경제부처 고위 관료의 회고다. 청와대의 태도를 도무지 이해 못했다고 했다. 북한의 요구 사항을 웬만하면 다 들어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2007년 10월 열린 2차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노무현 청와대’의 전략이었다는 것은 그 후에 알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 경협추진위는 북한 지원을 위한 ‘루트’였다. 그럼에도 북한은 수틀리면 핵 실험,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등 도발카드를 꺼내기 일쑤였다. 익히 잘 알려진 ‘도발-대화-보상요구’ 전략이다.

돈 요구 땐 비밀 접촉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2009년 10월 남북 싱가포르 비밀접촉이 대표적 예다. 그해 4월 장거리 미사일 실험과 5월 2차 핵실험을 한 북한은 남북 정상회담을 흥정 삼아 ‘거액’의 대가를 요구했지만 실패했다. 남북이 2011년 5월 중국 베이징에서 비밀리에 만난 사실은 북한의 폭로로 뒤늦게 알려졌다. 북한은 역시 정상회담 대가로 거액을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자 폭로했다는 설이 나돌았다. 이듬해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하면서 이명박 정부 남북관계는 교착상태로 끝났다.

북한은 올 들어 돌변했다. 상호비방 중지 등 중대제안을 하면서 유화 제스처를 취했다. 이산 상봉도 이뤄졌다. 지난해 3, 4월 김정은이 직접 소총을 들면서 전쟁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던 것과 비교하면 이상하다 싶을 정도다.

북한의 돌변에 대해 우리 고위 당국자의 분석은 다음과 같다. 김정은 집권 1, 2년차엔 내부 체제 공고화에 공을 들였다면 이제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특히 장성택 처형 이후 중국과 관계가 꼬인 상황에서 남측의 지원이 절실하다. 나진·선봉 경제특구에 진출했던 중국 기업들은 거의 철수했다. 북한 내부 상황이 뭔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박근혜 정부의 ‘원칙론’ 고수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현금 지원은 절대 않겠다는 게 확고한 원칙이다.

핵에 대해 입다문 북한

그렇지만 북한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청와대가 거절했지만, 지난달 판문점 접촉 사실 자체를 비공개로 하자고 요구한 것이 그렇다. 이산 상봉이 끝나자마자 지난달 27일 미사일 무력시위를 벌였다. 문제의 핵인 ‘핵(核)’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핵은 북한으로선 최후의 카드인 만큼 전략상 일시적 후퇴는 있을지언정 본질적 후퇴는 없을 것이라는 점은 과거의 사례들이 잘 말해준다.

미국은 최근 북한을 ‘악(惡)’으로 지칭했다. 또 “북한 인권상황이 여전히 개탄스럽다”고 했다. 남북이 화해무드로 들어가는 것을 견제하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남측의 원칙론과 미국의 이런 태도로 봤을 때 ‘도발-대화-보상요구’라는 북한의 ‘구습’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제2의 싱가포르 비밀회동’ 같은 방식도 어렵게 됐다. 북한이 대화 방식과 핵문제에 대한 근본적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으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은 보다 분명해졌다.

남측으로서도 풀어야 할 복잡한 함수들이 널려 있다. 통일은 대박이라고 하나 북한은 핵에 대해 꿈쩍 않고 있고, 미국은 북핵에 대해 매우 강경하다. 본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홍영식 정치부장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