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봄이다. 마른가지에 새싹이 돋아나고 잠들었던 생명이 다시 깨어나는 봄은 언제나 설렘이 가득하다. 따사로운 봄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앉아 봄의 온기를 느끼면 몸과 마음이 따뜻해진다. 옛말에 ‘밥 먹기는 봄같이 하라’ 했는데 봄의 향기를 흠뻑 머금은 냉이 된장국과 달래 무침을 마주하니 기분도 절로 좋아진다.

봄에 씨를 뿌리면 가을에 수확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그러나 싹이 터서 자라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모죽(毛竹)이라는 대나무는 씨를 뿌리고 5년간 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5년이 지난 이후에는 하루에 60㎝ 이상 자라기 시작해 무려 30m까지 성장한다. 알고 보면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방 곳곳에 뿌리를 내리며 힘차게 대지를 박차고 나올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2009년 1월 서울 여의도와 함께 부산 문현지구를 금융중심지로 지정했다. 그동안 각계각층에서 금융중심지 활성화에 관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제도적 기반을 조성하는 한편 외국 금융회사 유치와 금융전문인력 육성 등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얼마 전에는 선박금융을 전담할 기구인 해양금융종합센터와 한국해운보증을 부산에 설립하는 계획도 발표했다. 금융중심지의 집적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건립한 부산국제금융센터(BIFC)가 올해 6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조만간 한국거래소, 자산관리공사, 예탁결제원, 주택금융공사 등 공공금융기관 입주가 시작되면 부산 금융중심지의 발전을 실감하게 될 것으로 본다.

하지만 5년이 지난 현재까지 외국 금융회사 유치에 성과가 없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잠시 흔들렸던 뉴욕과 런던이 세계 금융중심지의 위상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모습이나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하고 있는 중국의 상하이 등과 비교할 때 실망스럽다고도 한다. 그러나 금융중심지의 발전에 기울인 지난 5년의 시간은 더 큰 대나무로 성장하기 위한 뿌리내림의 과정이었다는 생각이다.

금융중심지의 발전은 모죽을 키우는 것처럼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당장 성과가 없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금융중심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내 금융회사들이 세계 곳곳에 진출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나가는 일도 중요할 것이다.

성세환 < BS금융그룹 회장·부산은행장 sung11@busanban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