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2016년에 대한 단상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에 대해 어떤 막연한 기대를 품었던 모양이다. 본인과 정부가 사심 없이 열정적으로 일하면 좋아지지 않겠느냐는 것. 하지만 집권 1년차 경제는 어느 것 하나 성과로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다. 바닥을 기는 부동산 경기, 고령화 추세의 가속화, 늘어나는 가계부채 등 난제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대통령의 조바심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이대로 가면 자칫 경제에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은 새로운 돌파구, 뉴 플랜을 필요로 했다. 이런 속내를 잘 몰랐던 경제관료들로선 느닷없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돌출에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정책입안과 손질에 이골이 난 청와대 경제수석실조차 그랬다. 정부가 부랴부랴 준비한 방대한 정책집이 발표 당일 대통령의 담화문으로 대체된 데는 단시일 내 대통령과 관료들 사이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풍이 불고 있다

하지만 이제 이런 부차적인 것들은 다 잊자. 핵심은 박 대통령이 자신의 목표, ‘근혜노믹스’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화살을 쏘았다는 점이다. 연평균 4% 성장으로 2016년께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여는 것이다.

환율 급변과 특별한 악재가 돌출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달성 가능한 상황이다. 국제정세 불안과 가계부채 증가 등의 역풍도 있지만 순풍도 불고 있다. 한국 제조업 경쟁력은 최소 5년 정도는 세계시장에서 버텨낼 수 있다. 투자와 소비 부진도 규제완화 바람을 타고 최악의 상황은 비켜갈 수 있을 것이다.

현오석 부총리도 사석에서 올해 4%대 성장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고 있고 투자용 땅을 사들이는 기업들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란다. 가끔 뜻하지 않은 설화로 곤욕을 치르고 있지만 언제나 마음 속에 있는 얘기를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다. 경기를 보수적으로 보는 편인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시각도 비슷하다. 그는 얼마 전 기자를 만나 “올해 3.8% 성장은 충분히 가능하며 우리 경제 규모를 감안할 때 결코 낮은 성장률은 아니다”고 말했다. 저성장 탈출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언급한 것이다.

3만 달러의 의미

숫자가 뭐 그리 대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경제성과를 수치로 확인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국민들의 자긍심과 시민의식을 고양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념일과 이정표에 민감하다. 많은 국민들은 선진국 진입에 걸맞은 새로운 의식과 행동양식을 모색하고 전파해 나갈 것이다. 2002년 월드컵 4강의 환호 물결을 떠올려 보라. 축구 실력이 세계 4강이 아니라는 것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변방에서 오랫동안 숨죽여왔던 대한민국의 역동성을 확인하고 기뻐하는 축제로 다가왔다. 그것이 단 하나의 의미였다.

3만달러 달성 역시 우리 모두를 오랫동안 자조하게 만들었던 ‘2만달러 함정론’에 안녕을 고하는 축제다. 천국이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서민들의 체감경기 부진, 생산·소비 양극화 문제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원래 경제는 조금씩 전진하는 것이다. 대박은 없다. 촌보(寸步)를 모아야 단단해지고 의미가 있는 것이다. 2016년, 성장의 진정한 가치를 확인하고 기념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조일훈 경제부장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