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순 화백이 경기도 구리 덕소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최홍순 화백이 경기도 구리 덕소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고희(古稀)를 맞아서도 날마다 화구 앞에서 붓질하는 최홍순 화백에게 그림 작업은 ‘분노도 불안도 공포도 모두 색과 선율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행위’다. 한국적 추상표현주의 화가로 알려진 그가 5~11일 서울 인사동 라메르갤러리에서 고희전을 연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휘문고와 성심여고, 선화예술학교에서 제자들을 길러온 최 화백은 캔버스에 빛과 생명, 우주를 색의 물결로 묘사하는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경기 구리 덕소의 장욱진 화백 집에 드나들며 한국의 미의식을 익혔다.

‘생명의 율동’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1970~1980년대 풍경 구상 작품부터 2000년 이후의 추상 표현주의 작품까지 30년간 그린 작품을 연대별로 나눠 100여점을 건다.

모든 사물에는 다양한 색깔의 영혼이 있다고 생각한 그는 작품 소재를 젊은 시절 체험한 민화적 이미지에서 건져 올린다. 달과 해, 연날리기, 지신밟기 같은 것이 언제나 화면 한가운데에 핵심 모티브로 등장한다.

“민화는 형식이 자유롭고 표현이 활달해 그동안 꾸준히 벤치마킹해 온 장르입니다. 활활 타오르는 생명력도 매력적이고요. 꽉 짜인 구도 속에 기교적이며 감각적 표현으로 가득한 일본 그림에 비해 해학적이고 풍부한 상상력이 넘쳐나잖아요.”

그의 작품에서는 음악적인 소재도 아주 특별한 메타포로 다가온다. 작품에 ‘생(生)·률(律)’의 제목을 붙인 것도 음악에 대한 추억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 속에는 자유분방한 음악의 특성이 녹아 있다.

“생과 율의 주제는 이른바 미술과 음악의 융합을 꾀한 겁니다. 클래식 음악은 제 그림에 하모니를 제공하는 수단이죠. 작업실에서 듣는 드보르자크, 베토벤, 모차르트 등의 화음은 늘 제 조형성을 깨워주거든요. 음악을 통해 대상을 단순화하고 생략합니다.”

최 화백은 “회화를 음악이 지닌 우아함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싶다”며 “2000년 이후 풍경과 인물 등 대상의 형태를 깨뜨려 색면 속에 추상적으로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에서 자유분방한 붓질은 두텁고 둔탁한 질감으로, 화면은 현란한 색과 선율로 자리를 바꿨다. (02)730-545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