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노예 12년'과 '그래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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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미국 노예 해방과 남북전쟁의 도화선은 해리엇 비처 스토의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1852)이었다. 링컨이 백악관에서 “당신이 이 엄청난 전쟁을 촉발시킨 책을 쓴 바로 그 조그마한 여인이군요”라고 했던 에피소드도 유명하다. 그녀는 백인이었다.
그러나 한 해 뒤에 나온 흑인 남성 솔로몬 노섭의 자전소설《노예 12년》은 그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노섭이 노예 상인들에게 납치돼 12년간의 지옥을 겪고 탈출한 실화를 담았지만, 선구적인 흑인문학으로 재평가된 것은 한 세기가 지난 뒤였다.
그의 얘기를 담은 영화 ‘노예 12년’이 마침내 아카데미 작품상과 여우조연상, 각색상을 휩쓸었으니 노섭의 표정이 지하에서나마 좀 밝아졌을까. 흑인 감독으로는 아카데미 사상 최초로 작품상을 받은 스티브 매퀸도 서인도제도 인디언과 흑인노예 혈통이어서 감회가 남달랐으리라.
진정한 자유의 의미 일깨워
자유의 맛을 아는 사람은 결코 그것을 잊을 수 없다. 태어날 때부터 자유인이었던 노섭이 기약 없는 고통 속에서 체념하지 않고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가 자유인으로 살았던 뉴욕주 사라토가에서 해마다 7월 셋째 토요일을 ‘솔로몬 노섭의 날’로 정해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는 것 또한 그렇다.
7관왕을 차지한 ‘그래비티’도 생의 근원을 일깨워주는 영화다. 우주 미아의 생환기를 대기권 밖에서 찍은 것처럼 생생하게 담았는데, 절망 속에서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공포의 우주 공간에 버려진 채 ‘살아야 하는 이유’를 발견해가는 과정이 감동적이다.
제목인 ‘그래비티’는 중력이라는 뜻 외에도 주인공을 집으로 끌어당기는 힘을 상징하지 않는가. 우리를 땅에 발 붙이게 하고 서로 부대끼게 하는 중력은 그가 지구로 귀환해 다시 태어나는 삶의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도 수백㎞ 상공에는 우주 쓰레기와 인공위성 잔해들이 엄청난 속도로 돌면서 연쇄충돌하고 있다. 이 위험한 ‘케슬러 신드롬’은 인생이라는 고해의 바다에서도 우리를 위협한다.
희망 끌어당기는 중력의 힘
주인공 샌드라 불럭이 무중력 연기로 원초적인 인간의 몸짓과 감정을 절묘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6개월 동안의 요가 덕분이었다고 한다. 얼마나 연기가 실감났으면 미 항공우주국이 시상식 때 실제 유영 중인 우주비행사 사진 10여장을 공개하며 ‘그래비티’를 열렬하게 축하했을까.
시상식을 웃기고 울린 진풍경들도 우리 인생의 축소판이다. 사회를 맡은 엘런 드제너러스가 즉석에서 주문한 피자가 도착하자 ‘노예 12년’의 제작자인 브래드 피트가 턱시도 차림으로 서빙에 나서 웃음꽃을 피웠다. 피자를 배달한 남자는 다음날 NBC ‘엘런 쇼’에 출연하는 영광을 안았다. 엘런이 객석을 돌아다니며 톱스타들과 ‘삼성 셀카’를 찍어 트위터에 올린 덕분에 삼성전자가 아카데미상의 ‘진짜 승리자’가 됐다는 얘기도 유쾌하다.
이런 뒷얘기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삶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된다. 인간의 자유와 굴레, 삶의 목적과 이유, 꿈과 현실 등 거창한 것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의 가치도 함께 돌아본다. 행복론을 쓴 쇼펜하우어 또한 “우리는 갖고 있는 것에 좀처럼 감사하지 않고 언제나 없는 것만 생각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그러나 한 해 뒤에 나온 흑인 남성 솔로몬 노섭의 자전소설《노예 12년》은 그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노섭이 노예 상인들에게 납치돼 12년간의 지옥을 겪고 탈출한 실화를 담았지만, 선구적인 흑인문학으로 재평가된 것은 한 세기가 지난 뒤였다.
그의 얘기를 담은 영화 ‘노예 12년’이 마침내 아카데미 작품상과 여우조연상, 각색상을 휩쓸었으니 노섭의 표정이 지하에서나마 좀 밝아졌을까. 흑인 감독으로는 아카데미 사상 최초로 작품상을 받은 스티브 매퀸도 서인도제도 인디언과 흑인노예 혈통이어서 감회가 남달랐으리라.
진정한 자유의 의미 일깨워
자유의 맛을 아는 사람은 결코 그것을 잊을 수 없다. 태어날 때부터 자유인이었던 노섭이 기약 없는 고통 속에서 체념하지 않고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가 자유인으로 살았던 뉴욕주 사라토가에서 해마다 7월 셋째 토요일을 ‘솔로몬 노섭의 날’로 정해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는 것 또한 그렇다.
7관왕을 차지한 ‘그래비티’도 생의 근원을 일깨워주는 영화다. 우주 미아의 생환기를 대기권 밖에서 찍은 것처럼 생생하게 담았는데, 절망 속에서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공포의 우주 공간에 버려진 채 ‘살아야 하는 이유’를 발견해가는 과정이 감동적이다.
제목인 ‘그래비티’는 중력이라는 뜻 외에도 주인공을 집으로 끌어당기는 힘을 상징하지 않는가. 우리를 땅에 발 붙이게 하고 서로 부대끼게 하는 중력은 그가 지구로 귀환해 다시 태어나는 삶의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도 수백㎞ 상공에는 우주 쓰레기와 인공위성 잔해들이 엄청난 속도로 돌면서 연쇄충돌하고 있다. 이 위험한 ‘케슬러 신드롬’은 인생이라는 고해의 바다에서도 우리를 위협한다.
희망 끌어당기는 중력의 힘
주인공 샌드라 불럭이 무중력 연기로 원초적인 인간의 몸짓과 감정을 절묘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6개월 동안의 요가 덕분이었다고 한다. 얼마나 연기가 실감났으면 미 항공우주국이 시상식 때 실제 유영 중인 우주비행사 사진 10여장을 공개하며 ‘그래비티’를 열렬하게 축하했을까.
시상식을 웃기고 울린 진풍경들도 우리 인생의 축소판이다. 사회를 맡은 엘런 드제너러스가 즉석에서 주문한 피자가 도착하자 ‘노예 12년’의 제작자인 브래드 피트가 턱시도 차림으로 서빙에 나서 웃음꽃을 피웠다. 피자를 배달한 남자는 다음날 NBC ‘엘런 쇼’에 출연하는 영광을 안았다. 엘런이 객석을 돌아다니며 톱스타들과 ‘삼성 셀카’를 찍어 트위터에 올린 덕분에 삼성전자가 아카데미상의 ‘진짜 승리자’가 됐다는 얘기도 유쾌하다.
이런 뒷얘기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삶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된다. 인간의 자유와 굴레, 삶의 목적과 이유, 꿈과 현실 등 거창한 것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의 가치도 함께 돌아본다. 행복론을 쓴 쇼펜하우어 또한 “우리는 갖고 있는 것에 좀처럼 감사하지 않고 언제나 없는 것만 생각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