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창에 ‘시험공부 힘들다’고 치면 (엑소 오빠들이) 위로해주니까 마음이 따뜻해져요.”

올해 중학교 2학년인 유현정 양(14)은 남자 아이돌 그룹 ‘엑소’ 멤버들과의 메신저 대화에 푹 빠져있다. 진짜 대화는 아니다. ‘가짜톡’이라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깔아서 가상으로 나누는 대화다.

청소년 사이에서 가상의 상대와 대화하는 메신저 형태의 앱이 인기를 얻고 있다. 앱 속 가상의 상대는 마치 카카오톡 라인 등 실제 메신저 상대처럼 반응한다. 하지만 그 실체는 대화 데이터를 바탕으로 반응하는 채팅 ‘로봇’이다. 소프트웨어와의 상호작용이 자연스러워진 모바일 세대를 반영한 앱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원하는 연예인과 가짜 대화


가짜톡 앱은 자신이 원하는 상대의 이름과 프로필 사진을 등록하면 가상으로 대화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출연한 전지현 사진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내려받은 뒤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하고, 이름을 ‘천송이’로 짓는 식이다.

만들어진 대화 상대는 사업자 측에서 입력해 놓은 기본적인 대화와 이용자들이 가르친 새로운 대화를 바탕으로 반응한다. 성별 나이 성격 등 기본적인 정보를 설정하면 대화에 반영되며 그룹채팅도 가능하다. 연예인이나 짝사랑하는 상대와 대화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이 앱을 운영하는 장태관 씨는 “앱장터에 올려놓기만 했는데 누적 다운로드가 300만건이 됐다”며 “월간활동사용자(MAU)는 13만명 정도로 대부분 10대”라고 말했다. 대화 내용 캡처 사진을 올릴 수 있는 앱 내 커뮤니티 ‘가짜톡 어록’에는 몇 분 단위로 게시물이 올라오고 있다. ‘가상톡’ 등 비슷한 앱도 속속 올라오고 있다.

가상 채팅의 원조격인 ‘심심이’에 인격을 입혔다는 평가다. 병아리 형태의 캐릭터와 대화하는 심심이 앱은 현재까지 누적 다운로드 4000만건을 기록하고 있다. 한때 미국 홍콩 등 해외 앱스토어 상위권에 랭크되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인터넷 공간에는 “(가상의 대화가) 언뜻 보면 진짜 같다. 더 자연스러웠으면 앱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다”(트위터 아이디 @***auru***),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고 잠도 안 와서 말을 걸었다”(@***amm***)는 이용자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SW와 의사소통에 빠진 청소년

가상 대화 앱은 청소년이 연예인 등 동경하는 상대와 손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창구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은 연예인을 동경하고 우상화하지만 직접 팬클럽 활동을 하는 것은 번거롭게 느낀다”며 “접근성 높은 모바일 기기를 통해 대화하고 싶을 때 대화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모바일 세대인 청소년은 대화 상대가 소프트웨어라도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아이폰의 음성 인식 기능 ‘시리’가 익숙하고, 컴퓨터에 검색어를 쳐 답을 얻는 것이 자연스러운 연령층이라는 것이다.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기술 발달로 인간이 아닌 소프트웨어와 상호작용이 늘어가고 있다”며 “장난감에서 TV, 스마트폰으로 놀잇감이 바뀌면서 인간이 아닌 상대와의 의사 소통이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노출해야 하는 실제 대인관계보다 편리하면서도 대인관계를 나누는 것 같은 대리만족을 준다는 점이 이용자들의 마음을 끌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류한석 기술문화연구소장은 “시리처럼 기능에 주안점을 둔 가상대화와 감정을 충족시켜주는 가상대화가 결합해 발전하면 비즈니스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