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고 끌고…정상 향해 가는 길 "낙오는 없다"
연말연초 직원들과 산행
매주 명산 돌며 '화합 등반'…체력·정신 다지며 회사 체질개선 '한몫'
뷰티산업 한류열풍 주도
中 겨냥 세종시 공장 설립…베이징·광저우 등 생산 확대
지난달 22일 오전 11시 경남 하동군 지리산 둘레길 입구인 원부춘 마을회관 앞.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67)과 임직원 28명은 등산길에 오르기 전 주먹을 꽉 쥐고 구호를 외치면서 완주 의지를 다졌다.
윤 회장은 매년 연말 연초에 임직원들과 함께 지리산 12㎞를 걸으며 한 해를 정리하거나 신년 다짐을 하곤 한다. 사내에서는 이를 두고 이른바 소걸음으로 천리를 간다는 ‘우보천리’ 산행이라고 부른다. 그는 지난해 12월1일부터 이날까지 석 달간 주말마다 직원들과 지리산에 올랐다. 이 기간 중 행사에 참석한 직원이 300명을 넘는다.
칠순을 바라보는 윤 회장이 벌써 4년째 우보천리 산행을 강행하는 이유는 직원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다. 윤 회장은 “바다는 마음을 넓혀주지만 산은 굳은 의지와 서로가 하나되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며 “서로 밀고 끌어주면서 천천히, 우직하게 걷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오르게 된다”고 말했다. 또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살다 보니 서로의 손을 잡고 걸어갈 여유가 없다”며 “등산이야말로 우리(한국콜마 임직원)가 서로를 믿으면서 정상으로 가는 소통의 길”이라고 소개했다.
○업계 정상에 오른 ‘우보’ 정신
윤 회장은 지리산 산행 프로그램의 명칭을 손수 ‘우보’라고 지었다. 소처럼 뚜벅뚜벅 가자는 취지에서다.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멈추지 않고 우직하게 제 갈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윤 회장은 “소처럼 꾸준히 한 걸음씩 가자는 의미를 매년 직원들과 함께 느끼고 싶어 기획한 프로그램”이라며 “많은 중소기업이 생겼다 무너지는 모습을 봤지만 우리 회사는 25년간 한 해도 퇴보 없이 우보정신으로 꾸준히 성장해왔다”고 강조했다.
이런 경영 철학은 지속적인 실적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콜마는 국내 화장품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및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분야의 선두주자다. 지난해 화장품 매출만 3754억원을 기록했다. 자회사까지 포함하면 총매출이 6300억원에 달한다. 전년보다 13% 증가한 수치다. 국내는 물론 중국 베이징에도 진출하는 등 한류 뷰티산업을 세계에 확산시키고 있다.
윤 회장이 호루라기를 불며 출발 신호를 보냈다. 그가 앞섰고 한상복 기획관리본부 상무 등 임직원들이 뒤를 따랐다. 경영관리부, 회계부, 재무부, 인사총무부 등 여러 부서 직원들이 산행에 참여했다.
제법 이마에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혀도 윤 회장은 그다지 지치지 않는 모습이다. 주변에서 ‘강골’이라고 부를 만했다. 윤 회장은 지난해 5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코스를 완주했다고 했다.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매주 수도권 명산을 오를 정도로 등산 마니아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기자가 윤 회장 뒤로 따라붙었지만 걷는 속도가 20~30대 젊은이들보다 빨랐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뻗는다
윤 회장은 “올해 중국시장 성장세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5월 완공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세종시 화장품 생산공장도 중국시장을 겨냥한 것이다. 그는 “중국은 이제 세계의 굴뚝이 아니라 소비시장이 되고 있다”며 “넘치는 중국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공장이 완공되면 현재 국내 기초화장품 생산량의 3배인 연간 2억4000만개의 화장품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한국콜마는 올해 화장품 부문에서 전년 대비 약 27% 증가한 4754억원 규모의 매출을 거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체 매출은 8000억원대를 바라보고 있다. 윤 회장은 올해 사업계획을 묻는 질문에 “중국 진출 계획을 가진 미주 화장품 기업들이 주문량을 크게 늘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업체의 화장품 기술이 떨어지기 때문에 중국 베이징에 진출해 있는 한국콜마에 각국 화장품 업체들의 러브콜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베이징공장도 연내 2공장 증설을 완료할 계획이다.
윤 회장은 “기존 공장 부지에 조립라인이 더 들어서면 베이징 1·2공장을 합쳐 연간 1억4000만개의 기초·색조화장품을 생산하고 여세를 몰아 올해 현지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각오를 내비쳤다. 그는 중국 광저우에 베이징공장 5배 규모의 신규 공장을 건설하는 계획도 착착 진행 중이라고 털어놨다.
○“함께 걸으니 한 명의 낙오도 없어”
2시간30분가량을 꼬박 걸은 뒤 점심식사를 위해 윤 회장과 직원들이 둘러 앉았다. 준비한 컵라면과 두부김치, 김밥이 차려졌다.
윤 회장은 “회사에 있을 때는 언제 나랑 이렇게 앉아 아들·딸 얘기 해보겠느냐”며 “우리 제품이 세계 최고 품질을 자부하는 만큼 ‘우보천리’도 세계 최고의 직원 문화 프로그램으로 만들자”고 웃으며 말했다.
직원 김가연 씨는 “다른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힘들겠다고 하지만 사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모두 자발적으로 모인 것”이라며 “제대로 몰랐던 지리산에 대한 문화나 역사도 직접 설명해주시고 허물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임직원들이 다 좋아한다”고 했다.
이날 등반의 하이라이트는 윤 회장의 산중 명상법 전수였다. 오후 늦게 산을 내려오던 도중 윤 회장이 직원들을 불러세워 산 공기를 깊이 호흡하는 법, 눈을 감고 서서 명상하는 법 등을 소개했다. 한 상무는 “최고경영자(CEO)가 말로만 열심히 일하라고 하지 않고, 직원들과 이렇게 함께 보고 느끼면서 (산행 프로그램에) 매년 참여율이 높아지고 있다”며 “회사에 대한 자긍심도 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스님들이 동안거를 끝내는 마음처럼 겨울을 잘 마무리하고 따뜻한 봄의 시작을 임직원들과 느낀 좋은 기회였다”며 “산행을 통해 체력과 정신을 강화하는 것도 회사 체질 개선을 위한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오전부터 시작된 우보천리는 대략 7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지리산 원부춘 마을을 출발해 입석마을·대축마을에 있는 문암송을 거쳐 신촌마을까지 12.5㎞ 거리였다. 산행을 마친 윤 회장은 숨을 고르는 한 직원의 등을 토닥이면서 “소처럼 한 걸음씩 걸었는데 어느새 다 왔다. 우리가 함께 걸으니 중간에 한 명의 낙오자도 없다. 역시 등산은 함께 해야 제맛”이라고 말했다.
하동=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