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정부 때였다. 정부 업무를 해외에도 잘 알려야 한다는 논의가 급속도로 진행됐다. IMF 위기였던 만큼 경제부처 홍보가 특히 시급했다. 한국을 알리고, 외국인 투자도 유치해야 했다. 외신을 담당할 민간 전문가부터 기용하자고 결론났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작업은 의외로 새 직책의 작명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일선 부처의 공보관이나 홍보담당관이 있으니 외신이라고 붙이면 간단할 일이었다. 하지만 관(官)자가 문제였다.

‘관’이라니? 어떻게 해서 딴 관인데! 힘든 고시 공부 거쳐 겨우 다는 게 사무관(官)인데! 그리고 한 단계씩 서기관, 부이사관, 이사관, 마침내 일반직의 최고봉인 1급 관리관에 가는 법인데! 그렇게 해서 겨우 정무직 차관과 장관을 바라보는 것인데! 행시와 과거시험을 동일시한 왕조시대의 의식구조라면 한갓 민간인에 선뜻 ‘관’자를 달아준다는 것은 지동설만큼이나 낯설었을 지 모른다. 반대론은 상소문을 내민 채 내 목을 쳐라 하던 궁궐 앞의 농성자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결국 정해진 명칭이 외신대변인(人)이었다. 아직도 관은 영원한 관이요, 관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판이다.

그래도 몇 년 전부터 변화도 있다. 6급이 주무관으로 바뀌었다. 고시도 안 거친 주사에게 주어진 관이다. 공식적으로는 1급과 2급이 고위공무원단으로 통합됐다. 고공단 가, 나급으로 대체됐지만 그래도 1급, 2급이 익숙하다.

수십만 공시족들이 노리는 9급, 7급에선 기적이 아니고는 가기 힘든 자리가 1급이다. 행시를 거친 5급 중 30~40% 정도만이 도달한다. 그들도 25년 이상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넘볼 자리다. 연봉제가 되면서 근무평정에 따라 연급여는 6526만~9790만원으로 편차가 있지만 권한은 막강하다. 61만명이 넘는 행정부 소속 국가공무원 중 불과 300명 남짓이다. 예산실장처럼 OO실장, OO차관보, 서울지방국세청장 등…, 1급이 되면 기사 달린 승용차에 대궐 같은 사무실, 판공비나 기관운영비도 꽤 지급된다.

이렇게 폼나는 1급 중 하나를 공무원들이 민간에 내놓았다. 국무조정실 규제조정실장이다. 개방형 공모직이다. 생살 잘라주는 심정으로 최고위직을 내놓았을 텐데 적임자가 없어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은근히 기업인을 원하지만 도통 지원자가 없으니…. 평생 공무원들을 갑으로 모셔온 기업인에겐 텃세부터가 부담스럽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을의 설움과 온갖 규제에 진저리쳤던 배포 큰 기업인이라면 응모해보시라. 깔끔한 일솜씨라면 1~2년 뒤엔 장관 기용의 영예를 안게 될지 모를 일이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