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대학총장 인터뷰①] 첫 학부 신입생 받는 DGIST 신성철 총장 "연구원 아닌 창업리더 키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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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탑 고수하면 퇴보, 기업가정신 강조한 대학은 발전"
'無학과 단일학부' 실험… 융복합교육 컨실리언스관 신축
기술출자 연구소기업 6개 설립 '창조경제 대학모델' 추진
'無학과 단일학부' 실험… 융복합교육 컨실리언스관 신축
기술출자 연구소기업 6개 설립 '창조경제 대학모델' 추진
<대담 변관열 한경닷컴 산업경제팀장>
"해외의 앞서가는 대학들을 보면 '상아탑'을 고수한 곳은 퇴보합니다. 반면 기업가정신을 강조하는 대학은 발전하더군요. 실리콘밸리 성공을 주도한 스탠퍼드가 대표적이죠. 우리 공학교육도 바뀌어야 합니다. 그간 국내 이공계 대학들은 열심히 연구해 논문 잘 쓰는 학생들은 길렀는데 정작 리더를 못 키웠어요. 창업도 하고 조직도 이끌어 갈 리더를 길러내야 합니다."
3월 첫 학부 신입생 입학을 앞두고 만난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신성철 총장(62·사진)은 학교의 비전과 로드맵을 머릿속에 그려놓은 듯 술술 풀어놨다.
연구기관으로 출범해 설립 10주년을 맞은 DGIST는 올해 크게 변화한다. 2011년 대학원 과정 개설에 이어 학부 과정을 신설, 첫 신입생을 받는다. 명실상부한 교육기관으로 변신한다는 의미가 있다. 기존 연구기능에 교육기능까지 더해 양쪽을 균형 있게 발전시킨다는 복안이다.
첫 학부 신입생 모집이었지만 경쟁률은 예상보다 높았다. 10대 1 가까운 지원율로 앞으로의 전망을 밝혔다. 신입생 수준도 만족스럽다. 수도권과 과학고 출신 지원자가 각각 30%에 육박했다. 신 총장은 "기존 명문대에도 충분히 갈 수 있는 학생들이 학교 비전을 보고 입학한 것"이라며 "신입생들이 교육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어 더욱 기대가 크다"고 귀띔했다.
직접 찾은 캠퍼스는 들뜬 봄날 분위기였다. 캠퍼스 전체가 새단장에 들어갔다. 신축 건물 외관 디자인부터 '컨실리언스(consilience: 융복합·통섭)' 개념을 구현했다. 각 학부나 단과대 건물을 따로 짓지 않고 하나의 통로로 연결한 게 인상적이었다. 내부도 마찬가지.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모두 유리벽으로 만들어졌다. 분야별 장벽과 칸막이를 없애자는 취지를 담았다.
지난 2011년 취임한 신 총장은 그간 준비과정을 진두지휘했다. 새로운 DGIST의 비전을 제시하고, 그 실내용을 융복합교육과 기업가정신으로 채워 넣었다. DGIST가 야심차게 도입한 '무학과 단일학부' 교육실험, 전자교재 자체개발, 기술출자 연구소기업 등이 핵심 아이템이다.
신 총장은 "후발주자인 DGIST가 기존 대학을 따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승부수는 차별화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직접 학교에 와 보고 놀랐습니다. '상전벽해'랄까요.
"3년 전 처음 학교에 올 때가 생각납니다. 삼성전자 부회장을 지낸 윤종용 이사장님을 비롯한 여러분들에게서 총장으로 와 달라는 요청이 왔어요. 사실 고민이 됐죠. 1989년 KAIST(한국과학기술원) 교수로 가서 20년 넘게 있었으니까요. 많이 생각하다가 DGIST란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가는 게 가치 있는 일이라 판단해 오기로 결심했습니다."
- 지역에 연고가 전혀 없는 것으로 압니다만.
"연고는 전혀 없죠. 처음 동대구역에 내려서 차로 오는데 멀기도 했지만, 그때만 해도 학교가 허허벌판이었습니다. 연구동만 덜렁 있었고 건물이나 단지도 제대로 조성 안 된 때였어요. 이젠 신축 건물도 짓고 학생들도 받고 해서, 말씀대로 상전벽해 맞습니다. (웃음)"
- 처음엔 막막하셨겠네요. 어떻게 계획을 세워 발전시킨 건가요?
"제가 세운 경영철학 첫 번째가 차별성이었습니다. 기존 대학과 차별화된 곳을 만들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KAIST는 40년 앞서 나갔잖아요. 후발주자가 남들 쫓아가면 평생 2~3등이거든요. 그래서 차별성을 강조했죠. 거기에 선도성, 수월성을 함께 추구하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그러고 나서 '세계 초일류 융복합 연구중심대학'이란 비전을 수립했어요."
- '세계 초일류'란 표현이 상당히 도전적입니다.
"비전 자체가 무모해 보일 수도 있어요. 국내 대학들 비전을 보면 대부분 '세계적 대학'이 되겠다고 하지, '세계 초일류'란 표현은 잘 안 쓰죠. 후발주자로서 도전하겠다는 의지입니다. (웃음) 내용이 중요한데요. 융복합을 기치로 여러 전략을 세웠습니다. 대학원 과정을 만들면서 융복합 철학을 담아 교육프로그램을 6개 전공으로 구체화 시켰어요.
세부 프로그램 약자를 따 '미래브레인(MIREBraiN)'이라 이름 붙여봤습니다. 신물질(Materials) 정보통신(ICT) 로봇(Robot) 에너지(Energy) 뇌과학(Brain) 뉴바이올로지(New Biology)가 그것입니다. 이렇게 DGIST의 미래를 책임질 분야를 소개하면 다들 인상적으로 평가하더군요. 이 같은 기반 위에 올해 출범하는 학부 과정에 신입생을 받는 겁니다."
- 이번에 학부 과정을 신설한 계기는 뭡니까.
"대학원이 출범하면서 융복합인재 양성을 표방했는데 이를 위해 '학부 4년은 어떤 공부를 해야 하나'란 고민이 반영된 셈입니다.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고 봤어요. 물리 수학 화학 생물 컴퓨터 등 공학교육을 충분히 하자는 거죠. 이런 기초공학 교육은 좌뇌 교육이거든요. 여기에 창의력 인재로 길러내기 위해 인문사회·예술 교육, 리더십 교육 등 우뇌교육도 더하는 겁니다."
- 리더십 교육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이공계 대학들이 전공분야 연구 열심히 하고 논문 잘 쓰는 사람은 키웠어요. 그런데 리더는 못 키웠죠. 변리사, 기술평가자, 저널리스트 같은 분야도 이공계 학생들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리더십 교육이 뒷받침돼야 할 필요성이 있어요."
- 이공계 교육이 이론 쪽으로 치우쳤다는 얘기군요.
"박근혜 정부 들어서 창업과 기업가정신을 많이 얘기합니다. 저는 DGIST에 취임한 2011년부터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외국의 앞서가는 대학들을 보면 소위 상아탑만 주장하는 대학들은 점점 수준이 떨어집니다. 심지어 학문 분야조차 그래요. 반면 기업가정신을 강조한 대학들은 발전하는 게 눈에 보입니다.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습니까.
대표적인 예가 실리콘밸리와 스탠퍼드죠. 창업과 기업가정신을 강조한 스탠퍼드가 없었다면 실리콘밸리의 성공을 상상하기 힘듭니다. 캘리포니아공대(칼텍)는 학문적으로 굉장히 뛰어난 대학이에요. 기업가정신을 얘기하면 '학문이 오염됐다'고 반응하는 분위기였는데 최근 들어선 기업가정신을 가르칩니다. 상아탑만 고수하면 대학의 질이 떨어진다는 걸 깨달은 것이죠."
- 실제로 대학이 현장에서 필요한 인재를 배출 못한다는 문제의식이 만연합니다.
"우선 학생들이 자연스레 도전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그게 기업가정신이거든요. 그간 우리 대학교육이란 게 제일 똑똑한 학생들을 교수로 만들었어요. 논문 연구 같은 상아탑에 지나치게 묶여 있었죠. 심지어 공학 분야도 그랬습니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학생들에게 '넌 왜 거기로 빠지느냐'고 말릴 게 아니에요. 독려하는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수준으로 성장했다지만 그런 문화나 시스템은 선진국들에 비해 20~30년 뒤져있어요. 스탠퍼드는 1950년대에 이미 '실리콘밸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레드릭 터먼 교수가 학생들에게 창업을 적극 권장해요. 그런 선각자적 생각이 휴렛팩커드(HP)를 탄생시킨 겁니다. 기업뿐 아니라 학교부터 창업의 가치를 인정해줘야 합니다."
- 공학교육이 창업이나 기업가정신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죠.
"대학의 1차 혁명이 교육에서 연구로 기능이 확대된 것이라면, 2차 혁명은 연구능력을 기술사업화 등과 연결해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세계적 추세를 보면서 융복합교육, 리더십 교육, 기업가정신 교육 3가지를 강조하게 됐죠. 그렇게 하려면 학과로 갈라놓고선 안 되겠더군요. 그래서 4년간 무학과 단일학부 커리큘럼을 국내 최초로 시도한 겁니다."
- 방향은 맞는데 감이 잘 안 잡힌다는 반응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방향은 맞는데 너무 앞서가는 거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죠. 제가 '아니다, 잘 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융복합교육, 리더십 교육, 기업가정신 교육 세 축으로 무학과 단일학부가 잘 정착되리라 전망합니다."
- 그러면 학생들에게 학과나 전공은 따로 없는 건가요.
"기본적으로 '융복합전공'이 되는 것이죠. 다만 4학년 때 트랙을 둬서 맞춤형 교육을 합니다. 대학원 진학, 해외 대학원 등 타교 진학, 벤처·창업, 비(非)이공계 진출 등 4가지 트랙입니다. 학과는 없지만 이런 교육시스템이 오히려 핵심역량을 더 잘 가르칠 수 있다고 봐요. 학부교육을 충실히 하기 위해 전담교수도 뽑았습니다."
- 한 단계 더 도약하는 셈인데, 어떻게 출발합니까.
"DGIST의 기본 방향은 연구중심대학입니다. 많은 대학이 연구중심으로 가면서 학부교육을 상당부분 포기하는데, 그래선 안 됩니다. 학부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대학원에 진학해 연구자의 길을 걸어도 부족하기 마련이죠. 지금은 학부전담교육교수 20명 정도 있어요. 이들 교수가 학생교육을 전담하고, 연구는 대학원 교수들이 해 달라는 주문입니다."
- 단일학부로 가면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칠지도 흥미롭습니다.
"융복합교육을 할 수 있는 DGIST만의 자체교재를 개발했습니다. 세계 최초로 13종 모두 전자교재로 만들었어요. 어디서나 접근 가능한 유비쿼터스 성격이 강점이고, 업데이트도 쉽게 할 수 있죠. 지금 대학 교재들이 30~40년씩 된 것들이에요.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을 반영 못하는 단점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3D로 실감나게 공부할 수 있는 것 역시 장점입니다.
크로스오버 기능도 추가됐어요. 물리 공부하다 단어를 클릭하면 화학 분야로 넘어가는 식입니다. 가만히 자리에 앉아 여러 전공을 오가며 공부하는 겁니다. 소프트웨어 회사와 공동 개발해 디바이스에 상관없이 교재 이용이 가능해요. 거의 외국 원서를 가져다 쓰는 게 우리 현실인데, DGIST가 만들어낸 전자교재는 해외에 수출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게 바로 제가 강조한 차별성·수월성인 셈이죠."
- 첫 학부 신입생 선발인데, 경쟁률이 10대 1 정도로 높았습니다.
"생각보다 지원자가 많았습니다. 대학원 경쟁률 수준인 3대 1 정도를 예상했는데요. 이번에 온 신입생들은 우리 학교의 인재상과 혁신교육 프로그램에 '필'이 꽂힌 겁니다. 사실 국내 메이저 대학에 갈 수 있는 학생들이거든요. 학부모들은 거의 반대했을 거예요."
- 비결이 뭔가요.
"DGIST는 성적만 좋은 학생들, 입시 위주 학생들은 안 뽑았습니다. 전원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선발하는데 일반적 시각과는 좀 다르게 봅니다. 탐구심 호기심 창의성 같은 잠재적 요소를 평가합니다. 또 하나, 인류와 사회에 기여할 가능성이 보이는 학생을 뽑죠. 우수한 성적의 학생이 떨어지고 오히려 낮은 점수의 학생이 합격한 경우가 있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 처음 시작이니 일종의 모험인데요. 높은 경쟁률이 오히려 부담일 수도 있겠습니다.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저는 신입생들에게서 희망을 봤습니다. 학생들이 우리의 교육비전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어요. 입학사정관이 왜 여기 지원했는지 물으니 '창의성 교육을 넘어 지식 창출을 통해 배려와 기여하는 방안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한 게 DGIST밖에 없었다'고 답하더래요. 부모 설득이 안 된다며 저에게 설득해 달라고 부탁하는 학생까지 있었습니다."
- 완성된 학교보다 새로 커가는 학교에 대한 프라이드도 있을 듯합니다.
"항상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해요. 패스트 팔로어가 돼선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퍼스트 무버가 돼야죠. 그래서 저는 감히 '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비슬을 보게 하라'고 말하곤 합니다. 원래 관악을 인용해 서울대를 가리키는 문구인데, 학교 인근의 비슬산을 들어 얘기한 겁니다. 신입생들에게서 DGIST 오길 정말 잘했다는 얘기가 나오게 해야죠."
- 학생들에게 원하는 인재상은 뭡니까.
"제가 강조하는 게 △창의(Creativity) △기여(Contribution) △배려(Care)의 3C예요. 특히 기여를 언급한 것은 DGIST 학생들이 국가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만큼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차원입니다. 배려는 리더십, 즉 리더란 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이거든요. 그렇게 키워낼 생각입니다."
- 융복합교육을 줄곧 강조하셨는데, 정확히 어떤 분야들입니까.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전공 프로그램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치고나갈 분야를 만들 겁니다. 우선 뇌과학 분야는 독특하죠. ICT 분야는 얼마나 넓습니까. 그중에서도 사이버물리시스템(CPS) 분야를 특화할 겁니다. 구글 무인자동차도 CPS 초기 단계로 볼 수 있어요. 미국 카네기멜론대 미시간대 펜실베이니아대(유펜) 버지니아대 등 해외 4개 대학과 DGIST가 같이 CPS글로벌센터를 설립했습니다. 신물질 분야에선 로렌스 버클리 내셔널랩과 DGIST가 연구협력센터를 구축해 공동연구 합니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유니크한 분야, 앞서나갈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이외에도 식물연구, 인체를 직접 볼 수 있게 하는 나노바이오이미징 분야 등을 특화하고 있어요. 각 분야 석학인 버지니아대 손상혁 교수, 포스텍(포항공대) 남홍길 교수를 모셔오고 문대원 교수와 함께 3명을 펠로우로 임명했죠. 우수 교수를 영입하면 다른 연구자들도 자연히 따라오는 효과가 있습니다."
- 창조경제를 강조하는 시점인데, 학교가 발 벗고 나서 기술출자기업을 만들었다고요.
"우리 학교가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6개월 동안 6개 기업을 출범시켰습니다. 단순한 기술이전이 아니라 직접 기업에 들어가 멘토 역할을 하며 애로점도 즉시 해결해줍니다. 정부도 대학에 창조경제 산실 역할을 주문하는 만큼 굉장히 반응이 좋아요. 학사부와 연구부가 공존하는 DGIST만의 강점을 십분 발휘해 기초연구부터 응용연구, 상용화연구까지 가는 선순환구조가 빠르게 정립될 수 있습니다."
- 기존 산학협력은 더디거나 성과가 부족했는데, 기술출자기업은 좀 다른가요.
"이제 6개월 남짓이니 눈에 확 띌 만큼 매출이 나오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제가 와서 보니 기술출자기업이 답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 보유 기술을 가치평가 해 투자하고, 기업도 현금 출자해 기업을 출범시켰습니다. 그동안 산학협력이 지리멸렬했던 이유는 협업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기술이전 하고 끝내버리면 중소기업이 응용을 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에요.
우리 출자기업은 캠퍼스 내 산학협력관에 입주해 있어요. 공통적 애로사항을 학교가 풀어줄 수 있죠. 6개월마다 기술출자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연구원들이 참석하는 타운미팅을 열고 있습니다. 해당 기술을 발명한 대학 측 인사를 한시적으로 파견근무 하도록 해주고, 학생 인력을 기술 개발에 참여시키는 방안을 건의하더군요. 이렇게 소통하면서 함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 실제로 성과를 내는 기업은 있습니까.
"6곳 중에 이륜자동차 생산 업체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륜차에 들어가는 컨트롤 임베디드 시스템을 우리가 공급하는 건데 가능성이 있어요. 생산 제품을 학교가 구매해 테스트를 해주는 방법도 검토 중입니다.
기술출자기업들이 잘 성장하면 학생교육과도 연계할 수 있죠. 벤처 창업이나 CEO에 뜻 있는 학생들 위주로 이른바 '빌게이츠 트랙'을 운영할 생각이에요. 기업이 현장에서의 연구과제를 제시하면 학생들이 연구프로그램 그룹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을 정착시키려 합니다."
- 올해 학교 설립 10년째입니다. 후발주자로서의 강점을 꼽는다면요.
"제일 큰 게 '학연상생'이죠. 학사조직과 연구조직이 함께 있는 형태는 DGIST만의 고유한 인프라입니다. 예컨대 다른 대학은 정규직 연구원이 없는데, 우리는 있거든요. 정규직 연구원이 없으면 보통 연구를 박사과정에 의존합니다. 5년 과정 중에 한 3년 가르치고 1~2년 연구하면 수료합니다. 노하우가 쌓일 수가 없는 구조예요. 그런 점에서 DGIST는 연구의 선순환 사이클을 가져갈 수 있는 게 강점이죠."
- 오래 KAIST에서 생활하셨는데, DGIST에 와 보니 어떤가요.
"아직 연구업적의 규모나 질적인 부분은 한참 쫓아가야죠. 얼마나 빨리 쫓아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에요. 그런데 교육에 있어선 굉장히 빨리 따라잡을 겁니다. 이번 첫 학부 신입생을 잘 키워서 내놓는 4년 뒤 정도엔 DGIST 교육이 상당히 각광받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 그동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저는 우리 졸업생들이 지역에 많이 남았으면 합니다. 학부 신입생 약 30%가 수도권 출신인데, 졸업하고 다른 곳으로 가 버리면 의미가 없겠죠. 이번 석사과정 졸업생들 중에 대기업들 오퍼를 뿌리치고 지역기업을 택한 학생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졸업식에서 그 학생을 호명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고, 박수 쳐줬어요."
- 임기 3년이 지나고 마지막 한 해가 남았는데요.
"저는 매년 신년사에서 키워드를 던집니다. 올해 키워드는 '혼(魂)'입니다. 3류에서 2류로 가는 건 인재가 모이면 되고, 2류에서 일류로 가려면 이들이 열심히 역할을 하면 돼요. 일류에서 초일류로 대도약(퀀텀 점프) 하려면 혼을 바쳐야 함을 강조한 겁니다.
지난 3년을 돌아보면 아무 연고도 없는 제가 지역에 와 일하느라 힘들기도 했지만 보람도 있었습니다. 이제 저의 진정성을 이해하는 것 같아요. 지역적 폐쇄성을 타파하는 데 제가 조그마한 보탬이 됐다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도 기성 대학의 총장으로 일하는 것보다 DGIST에 와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어 큰 보람을 느낍니다."
◆ 신성철 총장은…
대전 출생. 경기고와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석사학위를,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KAIST 교수로 재직하며 부총장 기획처장 국제협력실장 등의 보직을 두루 거쳤다. 한국물리학회장·한국자기학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미국물리학회 펠로우(석학회원)로 선임됐다. 현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미래전략분과위원장, 미래창조과학부 연구개발사업 종합심의위원장, 한국연구재단 정책자문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2011년 DGIST 총장으로 부임해 학교를 이끌어가고 있다.
대구=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해외의 앞서가는 대학들을 보면 '상아탑'을 고수한 곳은 퇴보합니다. 반면 기업가정신을 강조하는 대학은 발전하더군요. 실리콘밸리 성공을 주도한 스탠퍼드가 대표적이죠. 우리 공학교육도 바뀌어야 합니다. 그간 국내 이공계 대학들은 열심히 연구해 논문 잘 쓰는 학생들은 길렀는데 정작 리더를 못 키웠어요. 창업도 하고 조직도 이끌어 갈 리더를 길러내야 합니다."
3월 첫 학부 신입생 입학을 앞두고 만난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신성철 총장(62·사진)은 학교의 비전과 로드맵을 머릿속에 그려놓은 듯 술술 풀어놨다.
연구기관으로 출범해 설립 10주년을 맞은 DGIST는 올해 크게 변화한다. 2011년 대학원 과정 개설에 이어 학부 과정을 신설, 첫 신입생을 받는다. 명실상부한 교육기관으로 변신한다는 의미가 있다. 기존 연구기능에 교육기능까지 더해 양쪽을 균형 있게 발전시킨다는 복안이다.
첫 학부 신입생 모집이었지만 경쟁률은 예상보다 높았다. 10대 1 가까운 지원율로 앞으로의 전망을 밝혔다. 신입생 수준도 만족스럽다. 수도권과 과학고 출신 지원자가 각각 30%에 육박했다. 신 총장은 "기존 명문대에도 충분히 갈 수 있는 학생들이 학교 비전을 보고 입학한 것"이라며 "신입생들이 교육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어 더욱 기대가 크다"고 귀띔했다.
직접 찾은 캠퍼스는 들뜬 봄날 분위기였다. 캠퍼스 전체가 새단장에 들어갔다. 신축 건물 외관 디자인부터 '컨실리언스(consilience: 융복합·통섭)' 개념을 구현했다. 각 학부나 단과대 건물을 따로 짓지 않고 하나의 통로로 연결한 게 인상적이었다. 내부도 마찬가지.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모두 유리벽으로 만들어졌다. 분야별 장벽과 칸막이를 없애자는 취지를 담았다.
지난 2011년 취임한 신 총장은 그간 준비과정을 진두지휘했다. 새로운 DGIST의 비전을 제시하고, 그 실내용을 융복합교육과 기업가정신으로 채워 넣었다. DGIST가 야심차게 도입한 '무학과 단일학부' 교육실험, 전자교재 자체개발, 기술출자 연구소기업 등이 핵심 아이템이다.
신 총장은 "후발주자인 DGIST가 기존 대학을 따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승부수는 차별화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직접 학교에 와 보고 놀랐습니다. '상전벽해'랄까요.
"3년 전 처음 학교에 올 때가 생각납니다. 삼성전자 부회장을 지낸 윤종용 이사장님을 비롯한 여러분들에게서 총장으로 와 달라는 요청이 왔어요. 사실 고민이 됐죠. 1989년 KAIST(한국과학기술원) 교수로 가서 20년 넘게 있었으니까요. 많이 생각하다가 DGIST란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가는 게 가치 있는 일이라 판단해 오기로 결심했습니다."
- 지역에 연고가 전혀 없는 것으로 압니다만.
"연고는 전혀 없죠. 처음 동대구역에 내려서 차로 오는데 멀기도 했지만, 그때만 해도 학교가 허허벌판이었습니다. 연구동만 덜렁 있었고 건물이나 단지도 제대로 조성 안 된 때였어요. 이젠 신축 건물도 짓고 학생들도 받고 해서, 말씀대로 상전벽해 맞습니다. (웃음)"
- 처음엔 막막하셨겠네요. 어떻게 계획을 세워 발전시킨 건가요?
"제가 세운 경영철학 첫 번째가 차별성이었습니다. 기존 대학과 차별화된 곳을 만들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KAIST는 40년 앞서 나갔잖아요. 후발주자가 남들 쫓아가면 평생 2~3등이거든요. 그래서 차별성을 강조했죠. 거기에 선도성, 수월성을 함께 추구하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그러고 나서 '세계 초일류 융복합 연구중심대학'이란 비전을 수립했어요."
- '세계 초일류'란 표현이 상당히 도전적입니다.
"비전 자체가 무모해 보일 수도 있어요. 국내 대학들 비전을 보면 대부분 '세계적 대학'이 되겠다고 하지, '세계 초일류'란 표현은 잘 안 쓰죠. 후발주자로서 도전하겠다는 의지입니다. (웃음) 내용이 중요한데요. 융복합을 기치로 여러 전략을 세웠습니다. 대학원 과정을 만들면서 융복합 철학을 담아 교육프로그램을 6개 전공으로 구체화 시켰어요.
세부 프로그램 약자를 따 '미래브레인(MIREBraiN)'이라 이름 붙여봤습니다. 신물질(Materials) 정보통신(ICT) 로봇(Robot) 에너지(Energy) 뇌과학(Brain) 뉴바이올로지(New Biology)가 그것입니다. 이렇게 DGIST의 미래를 책임질 분야를 소개하면 다들 인상적으로 평가하더군요. 이 같은 기반 위에 올해 출범하는 학부 과정에 신입생을 받는 겁니다."
- 이번에 학부 과정을 신설한 계기는 뭡니까.
"대학원이 출범하면서 융복합인재 양성을 표방했는데 이를 위해 '학부 4년은 어떤 공부를 해야 하나'란 고민이 반영된 셈입니다.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고 봤어요. 물리 수학 화학 생물 컴퓨터 등 공학교육을 충분히 하자는 거죠. 이런 기초공학 교육은 좌뇌 교육이거든요. 여기에 창의력 인재로 길러내기 위해 인문사회·예술 교육, 리더십 교육 등 우뇌교육도 더하는 겁니다."
- 리더십 교육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이공계 대학들이 전공분야 연구 열심히 하고 논문 잘 쓰는 사람은 키웠어요. 그런데 리더는 못 키웠죠. 변리사, 기술평가자, 저널리스트 같은 분야도 이공계 학생들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리더십 교육이 뒷받침돼야 할 필요성이 있어요."
- 이공계 교육이 이론 쪽으로 치우쳤다는 얘기군요.
"박근혜 정부 들어서 창업과 기업가정신을 많이 얘기합니다. 저는 DGIST에 취임한 2011년부터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외국의 앞서가는 대학들을 보면 소위 상아탑만 주장하는 대학들은 점점 수준이 떨어집니다. 심지어 학문 분야조차 그래요. 반면 기업가정신을 강조한 대학들은 발전하는 게 눈에 보입니다.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습니까.
대표적인 예가 실리콘밸리와 스탠퍼드죠. 창업과 기업가정신을 강조한 스탠퍼드가 없었다면 실리콘밸리의 성공을 상상하기 힘듭니다. 캘리포니아공대(칼텍)는 학문적으로 굉장히 뛰어난 대학이에요. 기업가정신을 얘기하면 '학문이 오염됐다'고 반응하는 분위기였는데 최근 들어선 기업가정신을 가르칩니다. 상아탑만 고수하면 대학의 질이 떨어진다는 걸 깨달은 것이죠."
- 실제로 대학이 현장에서 필요한 인재를 배출 못한다는 문제의식이 만연합니다.
"우선 학생들이 자연스레 도전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그게 기업가정신이거든요. 그간 우리 대학교육이란 게 제일 똑똑한 학생들을 교수로 만들었어요. 논문 연구 같은 상아탑에 지나치게 묶여 있었죠. 심지어 공학 분야도 그랬습니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학생들에게 '넌 왜 거기로 빠지느냐'고 말릴 게 아니에요. 독려하는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수준으로 성장했다지만 그런 문화나 시스템은 선진국들에 비해 20~30년 뒤져있어요. 스탠퍼드는 1950년대에 이미 '실리콘밸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레드릭 터먼 교수가 학생들에게 창업을 적극 권장해요. 그런 선각자적 생각이 휴렛팩커드(HP)를 탄생시킨 겁니다. 기업뿐 아니라 학교부터 창업의 가치를 인정해줘야 합니다."
- 공학교육이 창업이나 기업가정신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죠.
"대학의 1차 혁명이 교육에서 연구로 기능이 확대된 것이라면, 2차 혁명은 연구능력을 기술사업화 등과 연결해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세계적 추세를 보면서 융복합교육, 리더십 교육, 기업가정신 교육 3가지를 강조하게 됐죠. 그렇게 하려면 학과로 갈라놓고선 안 되겠더군요. 그래서 4년간 무학과 단일학부 커리큘럼을 국내 최초로 시도한 겁니다."
- 방향은 맞는데 감이 잘 안 잡힌다는 반응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방향은 맞는데 너무 앞서가는 거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죠. 제가 '아니다, 잘 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융복합교육, 리더십 교육, 기업가정신 교육 세 축으로 무학과 단일학부가 잘 정착되리라 전망합니다."
- 그러면 학생들에게 학과나 전공은 따로 없는 건가요.
"기본적으로 '융복합전공'이 되는 것이죠. 다만 4학년 때 트랙을 둬서 맞춤형 교육을 합니다. 대학원 진학, 해외 대학원 등 타교 진학, 벤처·창업, 비(非)이공계 진출 등 4가지 트랙입니다. 학과는 없지만 이런 교육시스템이 오히려 핵심역량을 더 잘 가르칠 수 있다고 봐요. 학부교육을 충실히 하기 위해 전담교수도 뽑았습니다."
- 한 단계 더 도약하는 셈인데, 어떻게 출발합니까.
"DGIST의 기본 방향은 연구중심대학입니다. 많은 대학이 연구중심으로 가면서 학부교육을 상당부분 포기하는데, 그래선 안 됩니다. 학부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대학원에 진학해 연구자의 길을 걸어도 부족하기 마련이죠. 지금은 학부전담교육교수 20명 정도 있어요. 이들 교수가 학생교육을 전담하고, 연구는 대학원 교수들이 해 달라는 주문입니다."
- 단일학부로 가면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칠지도 흥미롭습니다.
"융복합교육을 할 수 있는 DGIST만의 자체교재를 개발했습니다. 세계 최초로 13종 모두 전자교재로 만들었어요. 어디서나 접근 가능한 유비쿼터스 성격이 강점이고, 업데이트도 쉽게 할 수 있죠. 지금 대학 교재들이 30~40년씩 된 것들이에요.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을 반영 못하는 단점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3D로 실감나게 공부할 수 있는 것 역시 장점입니다.
크로스오버 기능도 추가됐어요. 물리 공부하다 단어를 클릭하면 화학 분야로 넘어가는 식입니다. 가만히 자리에 앉아 여러 전공을 오가며 공부하는 겁니다. 소프트웨어 회사와 공동 개발해 디바이스에 상관없이 교재 이용이 가능해요. 거의 외국 원서를 가져다 쓰는 게 우리 현실인데, DGIST가 만들어낸 전자교재는 해외에 수출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게 바로 제가 강조한 차별성·수월성인 셈이죠."
- 첫 학부 신입생 선발인데, 경쟁률이 10대 1 정도로 높았습니다.
"생각보다 지원자가 많았습니다. 대학원 경쟁률 수준인 3대 1 정도를 예상했는데요. 이번에 온 신입생들은 우리 학교의 인재상과 혁신교육 프로그램에 '필'이 꽂힌 겁니다. 사실 국내 메이저 대학에 갈 수 있는 학생들이거든요. 학부모들은 거의 반대했을 거예요."
- 비결이 뭔가요.
"DGIST는 성적만 좋은 학생들, 입시 위주 학생들은 안 뽑았습니다. 전원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선발하는데 일반적 시각과는 좀 다르게 봅니다. 탐구심 호기심 창의성 같은 잠재적 요소를 평가합니다. 또 하나, 인류와 사회에 기여할 가능성이 보이는 학생을 뽑죠. 우수한 성적의 학생이 떨어지고 오히려 낮은 점수의 학생이 합격한 경우가 있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 처음 시작이니 일종의 모험인데요. 높은 경쟁률이 오히려 부담일 수도 있겠습니다.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저는 신입생들에게서 희망을 봤습니다. 학생들이 우리의 교육비전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어요. 입학사정관이 왜 여기 지원했는지 물으니 '창의성 교육을 넘어 지식 창출을 통해 배려와 기여하는 방안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한 게 DGIST밖에 없었다'고 답하더래요. 부모 설득이 안 된다며 저에게 설득해 달라고 부탁하는 학생까지 있었습니다."
- 완성된 학교보다 새로 커가는 학교에 대한 프라이드도 있을 듯합니다.
"항상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해요. 패스트 팔로어가 돼선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퍼스트 무버가 돼야죠. 그래서 저는 감히 '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비슬을 보게 하라'고 말하곤 합니다. 원래 관악을 인용해 서울대를 가리키는 문구인데, 학교 인근의 비슬산을 들어 얘기한 겁니다. 신입생들에게서 DGIST 오길 정말 잘했다는 얘기가 나오게 해야죠."
- 학생들에게 원하는 인재상은 뭡니까.
"제가 강조하는 게 △창의(Creativity) △기여(Contribution) △배려(Care)의 3C예요. 특히 기여를 언급한 것은 DGIST 학생들이 국가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만큼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차원입니다. 배려는 리더십, 즉 리더란 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이거든요. 그렇게 키워낼 생각입니다."
- 융복합교육을 줄곧 강조하셨는데, 정확히 어떤 분야들입니까.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전공 프로그램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치고나갈 분야를 만들 겁니다. 우선 뇌과학 분야는 독특하죠. ICT 분야는 얼마나 넓습니까. 그중에서도 사이버물리시스템(CPS) 분야를 특화할 겁니다. 구글 무인자동차도 CPS 초기 단계로 볼 수 있어요. 미국 카네기멜론대 미시간대 펜실베이니아대(유펜) 버지니아대 등 해외 4개 대학과 DGIST가 같이 CPS글로벌센터를 설립했습니다. 신물질 분야에선 로렌스 버클리 내셔널랩과 DGIST가 연구협력센터를 구축해 공동연구 합니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유니크한 분야, 앞서나갈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이외에도 식물연구, 인체를 직접 볼 수 있게 하는 나노바이오이미징 분야 등을 특화하고 있어요. 각 분야 석학인 버지니아대 손상혁 교수, 포스텍(포항공대) 남홍길 교수를 모셔오고 문대원 교수와 함께 3명을 펠로우로 임명했죠. 우수 교수를 영입하면 다른 연구자들도 자연히 따라오는 효과가 있습니다."
- 창조경제를 강조하는 시점인데, 학교가 발 벗고 나서 기술출자기업을 만들었다고요.
"우리 학교가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6개월 동안 6개 기업을 출범시켰습니다. 단순한 기술이전이 아니라 직접 기업에 들어가 멘토 역할을 하며 애로점도 즉시 해결해줍니다. 정부도 대학에 창조경제 산실 역할을 주문하는 만큼 굉장히 반응이 좋아요. 학사부와 연구부가 공존하는 DGIST만의 강점을 십분 발휘해 기초연구부터 응용연구, 상용화연구까지 가는 선순환구조가 빠르게 정립될 수 있습니다."
- 기존 산학협력은 더디거나 성과가 부족했는데, 기술출자기업은 좀 다른가요.
"이제 6개월 남짓이니 눈에 확 띌 만큼 매출이 나오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제가 와서 보니 기술출자기업이 답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 보유 기술을 가치평가 해 투자하고, 기업도 현금 출자해 기업을 출범시켰습니다. 그동안 산학협력이 지리멸렬했던 이유는 협업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기술이전 하고 끝내버리면 중소기업이 응용을 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에요.
우리 출자기업은 캠퍼스 내 산학협력관에 입주해 있어요. 공통적 애로사항을 학교가 풀어줄 수 있죠. 6개월마다 기술출자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연구원들이 참석하는 타운미팅을 열고 있습니다. 해당 기술을 발명한 대학 측 인사를 한시적으로 파견근무 하도록 해주고, 학생 인력을 기술 개발에 참여시키는 방안을 건의하더군요. 이렇게 소통하면서 함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 실제로 성과를 내는 기업은 있습니까.
"6곳 중에 이륜자동차 생산 업체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륜차에 들어가는 컨트롤 임베디드 시스템을 우리가 공급하는 건데 가능성이 있어요. 생산 제품을 학교가 구매해 테스트를 해주는 방법도 검토 중입니다.
기술출자기업들이 잘 성장하면 학생교육과도 연계할 수 있죠. 벤처 창업이나 CEO에 뜻 있는 학생들 위주로 이른바 '빌게이츠 트랙'을 운영할 생각이에요. 기업이 현장에서의 연구과제를 제시하면 학생들이 연구프로그램 그룹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을 정착시키려 합니다."
- 올해 학교 설립 10년째입니다. 후발주자로서의 강점을 꼽는다면요.
"제일 큰 게 '학연상생'이죠. 학사조직과 연구조직이 함께 있는 형태는 DGIST만의 고유한 인프라입니다. 예컨대 다른 대학은 정규직 연구원이 없는데, 우리는 있거든요. 정규직 연구원이 없으면 보통 연구를 박사과정에 의존합니다. 5년 과정 중에 한 3년 가르치고 1~2년 연구하면 수료합니다. 노하우가 쌓일 수가 없는 구조예요. 그런 점에서 DGIST는 연구의 선순환 사이클을 가져갈 수 있는 게 강점이죠."
- 오래 KAIST에서 생활하셨는데, DGIST에 와 보니 어떤가요.
"아직 연구업적의 규모나 질적인 부분은 한참 쫓아가야죠. 얼마나 빨리 쫓아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에요. 그런데 교육에 있어선 굉장히 빨리 따라잡을 겁니다. 이번 첫 학부 신입생을 잘 키워서 내놓는 4년 뒤 정도엔 DGIST 교육이 상당히 각광받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 그동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저는 우리 졸업생들이 지역에 많이 남았으면 합니다. 학부 신입생 약 30%가 수도권 출신인데, 졸업하고 다른 곳으로 가 버리면 의미가 없겠죠. 이번 석사과정 졸업생들 중에 대기업들 오퍼를 뿌리치고 지역기업을 택한 학생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졸업식에서 그 학생을 호명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고, 박수 쳐줬어요."
- 임기 3년이 지나고 마지막 한 해가 남았는데요.
"저는 매년 신년사에서 키워드를 던집니다. 올해 키워드는 '혼(魂)'입니다. 3류에서 2류로 가는 건 인재가 모이면 되고, 2류에서 일류로 가려면 이들이 열심히 역할을 하면 돼요. 일류에서 초일류로 대도약(퀀텀 점프) 하려면 혼을 바쳐야 함을 강조한 겁니다.
지난 3년을 돌아보면 아무 연고도 없는 제가 지역에 와 일하느라 힘들기도 했지만 보람도 있었습니다. 이제 저의 진정성을 이해하는 것 같아요. 지역적 폐쇄성을 타파하는 데 제가 조그마한 보탬이 됐다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도 기성 대학의 총장으로 일하는 것보다 DGIST에 와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어 큰 보람을 느낍니다."
◆ 신성철 총장은…
대전 출생. 경기고와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석사학위를,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KAIST 교수로 재직하며 부총장 기획처장 국제협력실장 등의 보직을 두루 거쳤다. 한국물리학회장·한국자기학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미국물리학회 펠로우(석학회원)로 선임됐다. 현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미래전략분과위원장, 미래창조과학부 연구개발사업 종합심의위원장, 한국연구재단 정책자문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2011년 DGIST 총장으로 부임해 학교를 이끌어가고 있다.
대구=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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