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인들이 나일강의 수초 껍질에 글을 썼다 해서 종이의 역사를 약 4000년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페이퍼(paper)의 어원이 라틴어 파피루스(papyrus)였다는 것이고 보면 그럴 법한 설명이다. 하지만 모양과 용도만 비슷했을 뿐이다. 최초의 본격적인 종이는 105년 후한의 채륜이 발명했다. 지식이 확산됐고 인쇄혁명과 정보혁명이 일어났다. 그런 점에서 종이는 단순한 기록 도구가 아니라 문명의 황금기를 잇는 징검다리였다.

전자 문서로 모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요즘도 종이 사용량은 늘고 있다. 컴퓨터가 보급된 만큼 찾는 정보나 처리해야 할 자료가 많아졌고, 그만큼 문서화할 대상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프린터 복사기 등 사무기기의 보급이 확대된 것도 한 요인이다. 사무용으로 주고받는 이메일이 종이 사용량을 40%나 늘렸다는 통계도 있다. 만일에 대비해 문서화하기 때문인데, 직장인의 70% 이상이 PDF 파일로 된 청구서를 받으면 종이로 출력한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IT(정보기술) 국가라는 우리나라의 종이 생산량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1993년 약 580만t으로 세계 10위였으나 2008년 1064만t, 2012년 1133만t, 지난해 1180만t으로 늘어 세계 6위를 기록했다. 이 중 300만t을 수출하고 900만t은 국내에서 소비한다. 인터넷으로 신문이나 잡지를 보는 독자 중 기사를 종이로 스크랩하는 사람도 많다.

2년 전 인터넷 기업에 팔렸던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한동안 중단했던 종이판을 내일부터 다시 발행하는 모양이다. 종이판으로 구독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7만부 정도 찍는다는데, 구독료는 온라인보다 비싼 7.99달러(약 8600원)라고 한다. 한때 330여만부에 달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되지만 회사 측은 “종이판은 명품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2012년 크리스마스 이브 날 배포된 마지막 종이판이 떠오른다. 옛날 뉴스위크가 있던 빌딩의 흑백사진 위에 붉은 제호를 넣고 머리기사 제목 자리에 ‘마지막 인쇄판(Last Print Issue)’이라는 문구를 박은 표지였다. 그 무렵 아마존 창업주가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하고 프로야구단 보스턴레드삭스 구단주가 보스턴 글로브를 사들인 걸 보면, 종이매체의 미래가 어둡지 않다는 것을 눈치챘을 법도 한데 왜 그랬을까.

움베르토 에코의 말처럼 종이에 인쇄된 활자매체는 ‘더 이상 발전이 불가능할 만큼 완전한 것’이다. 그것은 지식의 결집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