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서 연세대 출신이 약진하고 있다. 최근 확정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와 김한조 외환은행장 내정자 등이 모두 연세대 출신이다. 이에 비해 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권을 호령했던 고려대 인맥은 뚜렷한 퇴조세를 보이고 있다.

◆연세대 출신 금융 CEO 급부상

이달 초 한은 총재로 내정된 이 후보자(경영학과 70학번)를 비롯해 김한조 내정자(불어불문학과 75학번), 올초부터 기업은행 사령탑을 맡은 권선주 행장(영어영문학과 74학번)이 모두 연세대를 나왔다. 올 들어 수장이 바뀐 국책·시중은행 및 금융 공기업 9곳 중 3곳의 CEO가 연세대 출신이다. 권 행장은 2007년 말 작고한 강권석 전 기업은행장 이후 6년 만에 배출된 연세대 출신 은행장이다.

금융지주사 중에선 지난해 6월 취임한 임종룡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연세대 출신(경제학과 78학번)이다. 금융권 전체로 보면 한국은행을 포함해 은행과 금융지주사, 금융공기업 25곳(은행연합회 소속 기준, 외국인 CEO 및 공석 등 제외) 중 4곳(16%)의 CEO가 연세대 출신으로 서울대(6곳·24%) 다음으로 많다. 연합회 소속은 아니지만 지난해 12월 취임한 안홍철 한국투자공사(KIC) 사장도 연세대 경영학과(70학번)를 나왔다.

이처럼 금융권에서 연세대 인맥이 ‘뜨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튀지 않는 학풍’이 꼽힌다. 비교적 조용하고 뭉쳐 다니지 않는 연세대 특유의 문화가 박근혜 정부의 스타일과 비슷해 중용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정부에서 득세했던 고려대 출신들이 몰락하고 이번 정부에선 박 대통령이 나온 서강대 출신들이 역차별을 받으면서 연세대 출신 인사들이 반사이익을 얻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연세대 출신인 한 시중은행 임원은 “그동안 금융권에서 연세대 인맥이 비주류로 분류돼온 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대 인맥은 ‘지고’, 서울대는 ‘여전’

연세대 인맥이 주목받고 있지만 아직 금융권의 주류는 서울대 출신이다. 은행과 금융지주사, 금융공기업 25곳 중 6곳의 CEO가 서울대 출신으로 가장 많다.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법학과 66학번)과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국어교육과 73학번), 김한 JB금융지주 회장 겸 전북은행장(기계공학과 73학번), 이건호 국민은행장(경영학과 77학번),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무역학과 72학번), 서근우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사회교육학과 79학번) 등이 서울대를 나왔다.

상고 출신도 아직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박인규 DGB금융지주 회장 겸 대구은행장 내정자(대구상고)와 이동대 제주은행장 내정자(선린상고), 손교덕 경남은행장(마산상고) 등 올 들어 새로 바뀐 지방은행장 3명 모두 상고 출신이다.

성균관대 출신은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법학과 73학번)과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행정학과 73학번), 김종준 하나은행장(경제학과 76학번) 등 3명이다.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경제학과 71학번)과 6일 수출입은행장에 취임할 예정인 이덕훈 전 우리은행장(수학과 67학번)은 서강대를 나왔다.

이명박 정부 때 금융권을 주름잡았던 고려대 인맥은 맥을 못 추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이른바 ‘4대 천왕’으로 불렸던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 3명이 고려대 출신일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하지만 이들이 차례로 물러나면서 금융권에서 고대 인맥은 위축됐다.

현재 18개 은행 중 고려대 출신 은행장은 서진원 신한은행장(사학과 70학번)이 유일하다. 금융공기업에선 김한철 기술보증기금 이사장이 고려대 행정학과(74학번)를 나왔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