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실리콘밸리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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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실 경영과학전문 논설위원 ahs@hankyung.com
미국 실리콘밸리를 모방하겠다는 도시가 줄을 잇고 있다. 영국 중국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우리도 그렇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내걸자 온통 실리콘밸리 얘기뿐이다. 실리콘밸리는 과연 미국 밖에서 복제할 수 있는 건가.
불행히도 실리콘밸리를 따라할수록 실리콘밸리의 고유성만 더 도드라지는 양상이다. 연구중심대학, 과학에 대한 정부의 신념, 왕성한 혁신금융에 기업가정신까지 일일이 인용할 수도 없다. 실리콘밸리에서 쏟아지는 창업이 부러워 여기저기서 흉내를 내보지만 결과는 영 신통치 않다. 그 때마다 실리콘밸리 콤플렉스만 더 깊어질 뿐이다.
'영어' '달러' '이주 발명가'
급기야 일본의 한 학자는 실리콘밸리의 미국 밖 재현 가능성은 제로라고 단언한다. 국제 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하고, 기축통화인 달러를 화폐로 쓰며, 전 세계 이주 발명가들이 몰려오는 곳이 실리콘밸리 말고 또 있느냐는 이유에서다. 안 될 꿈은 아예 꾸지도 말라는 얘기로 들린다.
다른 나라 입장에서는 씁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영어와 달러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주 발명가 부분은 특히 뼈아픈 대목이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에 따르면 2006~2010년 전 세계 이주 발명가의 59.1%가 북미로 흘러들어갔다. 같은 기간 아시아를 떠난 이주 발명가는 41.9%에 달했다. 이주 발명가의 현 거주지도 미국이 57.1%로 단연 압도적이다. 결국 아시아 등 타 지역은 일방적으로 미국에 발명가를 빼앗기는 구도다.
두뇌 유출을 당하는 국가로서는 그냥 두고 보기 어렵다. 실리콘밸리를 흉내라도 내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모방으로 과연 실리콘밸리와 경쟁이 가능하겠나. 다급한 나머지 인위적으로 생태계를 조성해보지만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 결국 대부분의 정부가 돈 퍼붓기로 직행해 버리기 일쑤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 정부가 쏟아내는 온갖 창업정책이 바로 그렇다.
한국 모델로 경쟁하라
모트 미국 공학한림원 회장은 한국 정부나 공공기관 등이 왜 돈을 싸들고 실리콘밸리로 몰려오는지 솔직히 이해가 안 간다고 말한다. 미국의 한 주(州)나 다름없는 이스라엘을 한국이 따라 하겠다는 것도 그렇고, 도덕적 해이를 낳을 게 뻔한 정부 지원금에 집착하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런 열정이 있으면 한국 문화에 맞는 솔루션 찾기에 쏟아붓는 게 맞지 않느냐는 충고다.
사실 정부는 교수·연구원·학생 창업을 외치지만 한국 벤처기업 대표이사의 이전 근무지는 80% 이상이 일반 기업체다. 창업보다 대기업 취직을 선호한다고 비판하지만, 대부분의 성공한 벤처들이 대기업의 사내 창업에서 탄생했다는 건 또 어떻게 봐야 하나. 정부는 왜 이런 사실에 눈을 감는지. 이 땅에서 온갖 시행착오 끝에, 그래도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해서 진화된 창업 경로들이다. 어쩌면 한국은 창업의 해답을 기존 기업이나 대기업에서 찾아야 할지 모른다.
미국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독일과 스위스는 이주 발명가들이 거주지로 택하는 각각 2, 3위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에서 실리콘밸리를 요란스럽게 떠받드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독일은 독일 모델로, 스위스는 스위스 모델로 간다. 기술로만 경쟁하는 게 아니다. 창조경제를 하겠다면 실리콘밸리와 경쟁할 한국 모델을 찾아야 하지 않겠나.
안현실 경영과학전문 논설위원 ahs@hankyung.com
불행히도 실리콘밸리를 따라할수록 실리콘밸리의 고유성만 더 도드라지는 양상이다. 연구중심대학, 과학에 대한 정부의 신념, 왕성한 혁신금융에 기업가정신까지 일일이 인용할 수도 없다. 실리콘밸리에서 쏟아지는 창업이 부러워 여기저기서 흉내를 내보지만 결과는 영 신통치 않다. 그 때마다 실리콘밸리 콤플렉스만 더 깊어질 뿐이다.
'영어' '달러' '이주 발명가'
급기야 일본의 한 학자는 실리콘밸리의 미국 밖 재현 가능성은 제로라고 단언한다. 국제 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하고, 기축통화인 달러를 화폐로 쓰며, 전 세계 이주 발명가들이 몰려오는 곳이 실리콘밸리 말고 또 있느냐는 이유에서다. 안 될 꿈은 아예 꾸지도 말라는 얘기로 들린다.
다른 나라 입장에서는 씁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영어와 달러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주 발명가 부분은 특히 뼈아픈 대목이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에 따르면 2006~2010년 전 세계 이주 발명가의 59.1%가 북미로 흘러들어갔다. 같은 기간 아시아를 떠난 이주 발명가는 41.9%에 달했다. 이주 발명가의 현 거주지도 미국이 57.1%로 단연 압도적이다. 결국 아시아 등 타 지역은 일방적으로 미국에 발명가를 빼앗기는 구도다.
두뇌 유출을 당하는 국가로서는 그냥 두고 보기 어렵다. 실리콘밸리를 흉내라도 내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모방으로 과연 실리콘밸리와 경쟁이 가능하겠나. 다급한 나머지 인위적으로 생태계를 조성해보지만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 결국 대부분의 정부가 돈 퍼붓기로 직행해 버리기 일쑤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 정부가 쏟아내는 온갖 창업정책이 바로 그렇다.
한국 모델로 경쟁하라
모트 미국 공학한림원 회장은 한국 정부나 공공기관 등이 왜 돈을 싸들고 실리콘밸리로 몰려오는지 솔직히 이해가 안 간다고 말한다. 미국의 한 주(州)나 다름없는 이스라엘을 한국이 따라 하겠다는 것도 그렇고, 도덕적 해이를 낳을 게 뻔한 정부 지원금에 집착하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런 열정이 있으면 한국 문화에 맞는 솔루션 찾기에 쏟아붓는 게 맞지 않느냐는 충고다.
사실 정부는 교수·연구원·학생 창업을 외치지만 한국 벤처기업 대표이사의 이전 근무지는 80% 이상이 일반 기업체다. 창업보다 대기업 취직을 선호한다고 비판하지만, 대부분의 성공한 벤처들이 대기업의 사내 창업에서 탄생했다는 건 또 어떻게 봐야 하나. 정부는 왜 이런 사실에 눈을 감는지. 이 땅에서 온갖 시행착오 끝에, 그래도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해서 진화된 창업 경로들이다. 어쩌면 한국은 창업의 해답을 기존 기업이나 대기업에서 찾아야 할지 모른다.
미국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독일과 스위스는 이주 발명가들이 거주지로 택하는 각각 2, 3위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에서 실리콘밸리를 요란스럽게 떠받드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독일은 독일 모델로, 스위스는 스위스 모델로 간다. 기술로만 경쟁하는 게 아니다. 창조경제를 하겠다면 실리콘밸리와 경쟁할 한국 모델을 찾아야 하지 않겠나.
안현실 경영과학전문 논설위원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