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말'뿐인 금융소비자 보호
“팔 때는 안전하다고 했습니다. 사고가 터지니까 금융감독원도 판매 회사도 ‘나 몰라라’ 합니다. 이럴 수 있는 겁니까?”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울분을 토한 B씨(59)는 은퇴한 지 5년 된 개인투자자라고 했다. 2011년 2월10일 B씨는 3년 동안 KB금융 주가가 3만1661원, 현대차 주가가 9만7716원까지 내려가지 않 으면 연 19.2%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주가연계증권(ELS)에 2000만원을 넣었다. 지난해 9월10일 문제가 생겼다. 미국계 자산운용사 PGI가 같은 날 오전 9시10분께 KB금융 약 14만5000주를 한 번에 팔아 주가가 3만1100원까지 떨어졌다. 금감원은 PGI의 ‘주문 실수’로 결론냈는데도 B씨는 지난달 6일 36.77%(735만원)의 손실이 확정됐다.

‘청천벽력’ 같은 PGI의 주문 실수로 돈을 잃게 된 B씨는 금감원에 ‘분쟁조정 구제신청’을 하고 판매사의 금융소비자보호부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금감원과 판매사에서 돌아온 대답은 “법과 규정상 도와줄 수 없다”였다. B씨는 “억울해서 잠이 안 온다”고 하소연했다.

금감원과 판매사 입장에선 뒷짐지고 있으면 당장은 편할 수 있다. 그렇지만 금융투자업계 전반을 생각하면 큰 타격이다. 주식시장에서 주문 실수와 같은 ‘비정상적’인 거래로 ELS 투자자가 손실을 보는 일이 재발하지 말란 법은 없다.

이번 사태처럼 ‘억울한 손실’을 입은 투자자를 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증권사의 주요 수익원인 ELS를 더 팔기 위해서라도 시급하다.

한 전문가는 금감원이 주문 실수 같은 ‘비정상적’인 주가 변동으로 손실이 확정될 경우 최소 원금이라도 보장해주는 규정을 만들면 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판매사와 금감원이 직접 나서 피해자의 소송을 지원해주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손실 가능성’을 ELS 투자설명서에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도 필요하다. 금융 당국과 증권사들이 입이 닳도록 강조하고 있는 ‘금융소비자 보호’는 뜻하지 않은 손해를 본 투자자 입장에서 고민해 보는 게 아닐까.

황정수 증권부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