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리얼리티쇼
2012년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인 ‘리얼리티: 꿈의 미로’는 리얼리티쇼 ‘빅 브러더’에 출연한 생선장수 이야기다. TV와 인터넷, SNS 등에 자신을 노출하고 싶은 현대인의 욕망과 이들을 가짜 꿈으로 유혹하는 미디어의 폐해를 다뤘다. 강박증과 피해망상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그 내면을 연민의 시각으로 들여다본 작품이다.

리얼리티쇼는 보통사람들의 사생활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의 엿보기 심리를 자극하는 TV 프로그램이다. 원조 격인 네덜란드의 ‘빅 브러더’는 여러 사람이 100일 동안 한 집에 사는 모습을 시시콜콜 보여주면서 전 세계의 팬들을 사로잡았다. 인기 비결은 출연진의 노출증과 시청자들의 집단 관음증이었다.

국내에도 외국 프로그램을 수입하거나 자체 제작한 리얼리티쇼가 넘친다. 남들의 생각과 행동을 엿보고 싶어하는 마음이야 누구나 갖고 있다. 처음 보는 이성의 유혹, 밀고 당기는 연애 심리, 극단적인 상황에서 경쟁 끝에 승리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얻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시청률이 치솟을수록 브라운관 뒤에 감춰진 출연자의 고통지수도 높아진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폭스TV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마스터셰프 3’에서 준우승했던 출연자는 심각한 신경장애를 앓다 권총으로 자살했다. ‘키친 나이트메어’에 출연했던 요리사는 “이따위 요리를 만드느니 차라리 강에 빠져죽어라”는 심사위원의 혹평을 듣고 뉴욕 허드슨 강에 투신했다. ‘헬스 키친’ 출연자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내에서도 ‘짝’의 여성 출연자가 촬영지에서 목을 매는 사태가 벌어졌다. ‘남녀 짝짓기 리얼 버라이어티 다큐’라는 거창한 콘셉트만큼이나 말 못할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이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숙명인 ‘악마의 편집(자극적인 요소를 모아 상황을 극대화하는 편집)’까지 각오해야 하니 더 그랬을 수도 있다.

당장 프로그램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처음 본 남녀가 무슨 순애보의 주인공처럼 집착하고 울기까지 하는 꼴에 기가 막힌다’ ‘TV쇼에 나와서 짝 찾겠다는 게 건강한 정신으로 할 수 있는 짓이냐’ ‘진작 없앴어야 하는 리얼 막장쇼’ 등의 비난도 잇따른다.

리얼리티쇼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쇼다. 거기에 출연하는 사람은 엔터테이너다. 결국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게 아니라 ‘재미있게 보이는 현실만 엮어서’ 보여준다. 때로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기도 한다. 그 의식의 착시 때문에 목숨까지 잃게 됐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