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과 날줄] 책 속에 있는 길
취업포털 ‘잡코리아’에서 최근에 조사 결과를 언론에 발표했다. 직장인 217명에게 독서실태 설문조사를 했더니 지난해 평균 9.8권의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9.8이라는 수치가 과연 정확한 것일까. ‘당신은 작년 한 해 몇 권의 책을 읽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7권을 읽은 사람은 10권이라고 답하고, 10권을 읽은 사람은 15권이라고 답하지 않았을까.

전동열차 속에서 책을 읽는 젊은이는 거의 없다. 대학생들에게 교재(주로 교양과목의 교재)를 인터넷서점이나 구내서점에서 구입하라고 하면 안 사는 학생이 많다. 시험 때가 되면 친구의 책을 빌려 필요한 부분만 복사한다. 책이 어느새 우리네 일상적 삶에 귀찮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이런 생각이 우리들 사이에 팽배해 있는 것 같다. 책은 짐이다, 특히 이사할 때 귀찮다, 휴대폰만 켜면 모든 정보를 바로 알 수 있는데 왜 책을 사나, 금방 버리게 되니까 아예 사지 않는다….

잡코리아에서는 직장인들이 구입하는 책은 크게 소설(51.2%)과 자기계발서(47.9%)라고 집계했다. 진지한 책은 딱딱한 책인지라 바쁜 직장인들은 구입을 기피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역사서도 요즈음은 재미있는 읽을거리로 편집을 한다. 무조건 재미있게 상품화를 시킨다. 그래도 구입을 안 하는 것이 문제다.

연중 다섯 번 정도 편지를 받는다. 가지고 있는 책 기증을 좀 해달라고. 편지를 보낸 곳의 처지를 고려해 책을 보내주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별로 안 좋다. 왜 이런저런 단체에서조차도 책을 구입하지 않고 그저 얻으려 하는 것일까.

이 나라 출판계를 고사시키지 않으려면 각급 학교의 도서관과 지역 도서관이 책을 보유하는 기능을 제대로 발휘해야 한다. 일본은 군소 출판사라도 쉽게 문을 닫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전국 방방곡곡의 학교 도서관과 지역 도서관에서 웬만큼 가치를 지닌 책이라면 구입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출판계는 빈익빈부익부가 너무 심하다. 문을 여는 출판사도 많지만 연간 한 권도 책을 안 내는 출판사도 엄청나게 많다. 망한 것이다. 굴지의 출판사도 픽픽 쓰러진다.

언젠가 텔레비전 책 소개 프로그램이 도서출판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한 적이 있었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이 책을 보고 있자 그 책이 삽시간에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몇 번 있다. 심지어 시집도 몇 권 날개 돋친 듯 팔려 초판에서 멈췄던 시집이 몇 쇄를 더 찍었다는 후문이 들려오기도 했다. 이런 반짝 행사는 사실 갈증을 일시적으로 해소케 하는 음료수의 기능을 하지 출판시장의 거름 역할은 하지 않는다.

‘책 선물하기 운동’을 제안한다.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심지어 빼빼로데이니 하는 날에 사탕이나 과자를 선물하기보다는 책으로 내 마음을 전하는 것은 어떨까. 그 책 앞머리에 친필로 사인을 하는 것이다.

‘아무개야, 너의 중학교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 책은 내가 사춘기 시절 방황했을 때 읽고 큰 용기를 얻었기에 너한테 선물하는 거란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외삼촌이.’

뭐 이런 식으로 몇 마디 써서 주면 외삼촌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읽지 않을까. 고등학생 가운데 진로를 정하지 못해 고민하는 학생들이 엄청나게 많다. 대학생 중에도 적성에 안 맞아 학업에 흥미를 잃고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 인생의 등댓불이 될 수 있는 책을 못 만나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닐까. 이 세상의 많고 많은 책 중에는 분명히 교사 노릇을 해주는 것이 있다. 그 책을 못 읽었기에 고민에 빠져 있는 청소년, 대학생, 성인들이여. 책을 읽자. 책 속에서 길을 찾자.

이승하 < 시인·중앙대 교수 shpoem@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