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KT 회장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KT 광화문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객정보 유출 사고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황창규 KT 회장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KT 광화문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객정보 유출 사고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7일 서울 광화문 KT 사옥 15층 기자실. 황창규 KT 회장이 지난 1월27일 취임 뒤 처음으로 기자들 앞에 섰다. 전날 드러난 홈페이지 해킹 사건에 대해 사과하기 위해서였다. 취임 뒤 첫 기자회견이 대국민 사과가 된 것이다. 황 회장은 “가입자 120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데 대해 전 임직원을 대표해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황 회장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물론 조속한 원인 규명을 통해 관련자를 엄중 문책하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황 회장의 시련이 깊어지고 있다. 취임 직후부터 잇달아 터진 대형 악재로 위기를 맞고 있다. 계열사 직원이 연루된 대출사기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는 가운데 1200만명의 고객정보 유출이라는 어이없는 사고가 터졌다. 다음주 13일부터는 45일간 장기 영업 정지에 들어간다. 취임 뒤에도 KT 가입자 이탈은 멈출 줄 모른다. 지난해 사상 첫 연간 적자에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수모도 겪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취임 일성으로 ‘1등 KT’를 선언했지만 벌써부터 빛이 바래고 있다.

◆끊이지 않는 악재

KT, 대출사기·고객정보 유출·45일 영업정지까지…시련의 황창규…위기극복 리더십 시험대
황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임원 수를 27% 줄이는 조직개편을 통해 KT의 대수술에 나섰다. 연봉 30%를 반납하며 비상경영도 선포했다. ‘1등 DNA’를 회복하자며 정신무장도 강조했다. 특히 이석채 전 회장이 외부에서 영입한 임원들을 내보내고 그 자리를 내부 출신으로 채웠다. 내부에 팽배했던 자괴감은 자신감으로 바뀌는 듯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달 6일 적발된 대출사기 사건이 결정타였다. 계열사 KT ENS 직원이 협력 업체들과 짜고 금융회사로부터 1조8000억원대 대출사기를 받은 사건이 터진 것. 내부 통제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기업 이미지는 추락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회사 홈페이지에서 가입자 대부분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해킹 사고까지 터졌다. 2012년 전산망 해킹으로 870만명의 고객정보가 유출된 지 반년 만에 다시 해킹을 당했지만 KT는 1년 동안 까맣게 몰랐다. 해커일당은 KT의 홈페이지뿐 아니라 음원판매 전문 사이트인 올레뮤직도 해킹해 50만명의 고객정보를 텔레마케터에게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내부 경쟁력도 약화

대외 악재 말고도 실적 개선, 먹거리 창출 등 황 회장에게 주어진 숙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사고 수습에 매달리다 보니 회사 경영에 쏟을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다. KT는 지난해 당기순손실 603억원을 기록, 창사 후 첫 연간 적자를 기록했다. 그 여파로 신용등급(무디스)이 A3에서 Baa1로 한 단계 추락했다. KT는 9000억원을 들여 추진한 사업·정보시스템(BIT) 프로젝트의 손실분 등을 반영해 적자가 났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올해에도 실적이 크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KT는 1~2월 번호이동 시장에서만 8만명이 넘는 고객을 잃었다. 점유율 30%가 무너질 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주부터 45일간의 영업 정지에 들어간다. 황 회장은 전날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의 통신 3사 CEO 간담회에서 “가입자 유치 전쟁 때문에 다른 사업을 할 여력이 없고,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며 “이런 식으로 하다간 IT사업에 미래가 없다”고 토로했다.

◆위기 극복 리더십 필요

연이은 고비를 맞으며 황 회장의 리더십은 시험대에 올랐다. 비록 전임 CEO 시절 발생한 사건·사고지만 황 회장의 경영 행보에는 적잖은 부담이다. 물론 이번 사태를 빠르게 수습하는 리더십을 보일 경우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전열을 재정비해 한시라도 빨리 가입자 및 실적 회복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황 회장이 대대적인 조직쇄신을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KT 한 관계자는 “취임 직후 단행한 조직개편은 전임 CEO 시절 이뤄졌던 비정상적 인사를 정상화하는 과정에 불과했다”며 “향후 황 회장의 경영구상이 윤곽을 드러내면 조직개편이 다시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