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아름다운 마무리
2012년 여름으로 기억한다. 평소 바쁜 업무로 문화생활을 할 기회가 없음을 잘 아는 딸아이가 김연아 복귀 기념 아이스쇼가 있으니 가족들 모두 가자고 표를 사왔다. ‘복귀 기념’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김연아 선수가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후 2년 남짓 공백기를 거쳐 다시 선수로 복귀하기로 결정하고 가진 행사였기 때문이란다.

1만여석이 꽉 찬 올림픽 체조경기장. 관객들은 아이스쇼가 주는 아름다움, 우상인 김연아를 가까이 볼 수 있다는 설렘이 합쳐져 열광의 도가니에 묻혔다. 좋아하는 딸아이에게 미안해서 말하지 못했지만, 나는 속으로 스포츠선수가 상업적 활동을 하면서 성공할 수 있을까? 운동에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려서 너무 빨리 돈맛을 알게 되면 선수 인생에 좋지 않은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잠재해 있어 그리 가벼운 마음으로 공연을 관람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나는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와 김연아를 잊고 지냈다.

그런 나에게 김연아가 전혀 새롭고 감동스러운 인생으로 다가왔다. 바로 소치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금메달을 따지 못하고 은메달을 딴 다음 ‘인간 김연아’를 봤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준비했고 결과에 상관없이 나의 최상의 것을 보여주었으므로, 그것으로 나는 만족하며 이젠 홀가분하다는 취지의 고별사 때문이었다.

김연아는 17년간 선수생활을 했으며 이제 25세인 젊은 청년이란다. 25세의 젊은이에게 어떻게 저런 인격적 성숙과 프로다움이 균형 잡혀 있을 수 있을까? 김연아의 이런 인격적 성숙의 배경에는 오랜 시간 부상과 편파판정에 시달렸던 고난의 시절이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오로지 실력 하나로 세계 정상에 오른 김연아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보며, 상업주의에 빠진 것이 아닌가 했던 나의 편견을 후회하고 이제야 비로소 딸아이에게 사과했다.

우리 모두 어느 시점이 되면, 그것이 일이든 인연이든 마무리를 하고 떠나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결코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긴 고난의 터널을 거쳐야 비로소 햇빛 가득한 터널 입구를 만나게 되고, 혹독한 훈련을 거쳐야 영광의 시상대 위에 서게 된다. 먹음직한 열매 뒤에는 오랜 참음과 희생이 숨어 있다. 그 과정 과정 속에는 때로 진심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도 있고, 포기하고 놓아 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고난의 광야 길을 가는 인생들이여, 그 종착역에서 아름다운 고별사를 남길 수 있도록 오늘도 힘 있게 일어서 달려가자.

김재훈 < 법무법인 광장 대표변호사 jaehoon.kim@leek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