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두 씨가 영상설치작품 ‘크레용팝 스페셜’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리움 제공
정연두 씨가 영상설치작품 ‘크레용팝 스페셜’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리움 제공
“크레용팝에 열광하는 ‘팝저씨’는 한국 중년 남성의 자화상입니다.”

서울 태평로 삼성미술관 플라토 전시장에서 만난 정연두 작가는 보통사람들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지난 12일부터 오는 6월8일까지 개인전 ‘무겁거나, 혹은 가볍거나’ 전을 여는 정씨를 13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2007년 국립현대미술관 최연소 ‘올해의 작가’, 2012년 미국 아트 앤드 옥션의 ‘가장 소장 가치 있는 50인의 작가’에 선정된 그는 베니스 비엔날레 등 국제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국 현대 화단의 대표주자다. 이번 전시는 개인전으로는 6년 만에 여는 것으로 신작과 초기 대표작을 함께 선보인다.

그가 이번에 가장 역점을 둔 작품은 크레용팝에 열광하는 중년 남성 모임을 그린 설치 영상물 ‘크레용팝 스페셜’. 전시실 안쪽 커튼을 드리운 널찍한 공간 안에 크레용팝 공연 무대를 재현하고 30분짜리 영상물을 설치했다. 영상 속의 트레이닝복 차림 남성들은 절도 있는 함성으로 크레용팝을 부르고 무대 위에선 LED(발광다이오드)핀볼 조명이 흥을 돋운다.

“팝저씨들은 1980년대 시위와 군대생활을 경험했고 지금은 가정 직장 사회에서 힘겹게 삶을 영위하는 존재들입니다. 이들이 어느 날 역경 속에서도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걸그룹의 어린 여성들에게 감동받아 후원을 자처하고 나섰죠.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통일된 함성과 몸짓을 보인다는 거죠. 한 개인의 목소리라기보다 마치 사회를 향한 집단적 외침 같아요.”

그가 작품에 보통 사람, 사회적 약자를 단골로 등장시키는 것은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그들의 삶을 통해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작가의 태도는 또 다른 신작 ‘베르길리우스의 통로’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작품은 로댕의 명작 ‘지옥의 문’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상을 실제 모델을 동원해 재연한 가상현실 작품이다. 관객은 전시실 안에 비치된 3D(3차원) 게임 디바이스인 오큘러스 리프트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지난해 3월 일본 체류 중 사진 촬영 취미를 갖고 있는 한 시각장애인 안마사를 알게 됐다”는 그는 “정상인들은 방사능 같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데 비해 이 시각장애인은 볼 수 없는 일상을 기록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를 계기로 “본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됐다”는 것이다.

3D 작품은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조소인데 앞으로도 이런 작업을 계속해 나갈 것이냐고 묻자 “관객이 오큘러스 리프트를 쓰고 전시장을 돌게 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를 위해 최근 이교구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와 함께 미세 초음파 탐지 기술 개발 연구팀을 발족했다. 또 세계적인 가방업체인 시몬느의 후원 아래 3D 전시 감상용 가방키트의 개발도 추진 중이다.

정씨는 오는 10월에는 대구미술관에서, 11월에는 일본 미토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전시와 연계해 작가와의 ‘아트 토크’(22일)와 강연회도 열린다. (02)1577-7595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