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보호' 외치던 中企, '자립'을 얘기하다
대기업과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약자’로 규정하고 정부와 정치권에 ‘보호와 지원’을 줄기차게 요구해온 중소기업인들이 올해 들어 확연히 달라졌다. 도움을 요청하기보다는 ‘자립’과 ‘나눔’을 얘기하고 있다.

중소기업인들은 최근 2~3년 동안 경제민주화 정책으로 △중기 적합업종 제도 도입 △협동조합 납품단가 조정협의권 신설 △징벌적 손해배상제 강화 △일감 몰아주기 금지 등 중소기업을 위한 제도적 틀이 마련됐다고 보고 있다. 앞으로는 중소기업이 스스로 경쟁력을 강화하고 사회적 약자를 돕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전사로 변신하자”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이 올 들어 중앙회 정기총회나 신년 기자간담회 등 각종 행사에서 가장 강조한 단어는 ‘스스로’다. 김 회장은 “경제민주화 노력으로 대기업과 공정하게 경쟁할 틀은 만들어졌다”며 “이제 중요한 것은 중소기업 스스로 시장을 개척하고 자립하려는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2012년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전후로 경제민주화 논의가 봇물 터지듯 제기됐고, 그 결과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입법과 각종 조치가 나왔다.

김 회장은 이에 대해 “중소기업이 뭔가 얻어내기 위해 떼를 쓴다는 이미지를 (우리 사회에) 줘서는 안 된다”며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으로 대기업과의 공정한 ‘게임의 틀’이 만들어진 만큼 중소기업인들도 자립하려는 노력이 중요한 시점이 됐다”고 13일 말했다. 중기중앙회는 올해를 ‘중소기업 글로벌화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한국가업승계기업협의회를 이끌고 있는 강상훈 동양종합식품 회장은 “2세 기업인들이 해외 진출에 앞장서야 한다”며 “필리핀 등 동남아 지역 기업들과 세미나, 간담회 등을 열고 해외 진출 가능성을 타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혜린 옴니시스템 회장은 “중소기업들도 국내 시장에서 대기업들과 다투지 말고 해외시장으로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재광 광명전기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규제 개혁에 대해 중소기업인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중소기업 지원을 늘리는 것보다 규제 개혁을 철저히 하는 게 중소기업인에게 더 큰 도움이 된다”며 “대통령이 끝까지 챙겨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시혜자에서 기부천사로

중소기업인들이 ‘나눔경영’을 강조하는 것도 큰 변화 중 하나다. 안토니(수제화 전문기업)의 김원길 사장은 “나눔은 더 이상 대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재계에서 유명한 ‘기부천사’다. 사회봉사단체 지원과 장학사업 등에 연간 매출의 1~2%를 쓰고 있다. 2012년엔 3억원, 지난해엔 6억원을 썼다. “사회공헌이란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돌려주는 것일 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중소기업인들은 2012년 ‘중소기업 사랑나눔 재단’을 발족했다. 첫해엔 1200여명이 17억원을 내놨고, 이듬해인 지난해에는 1820명이 33억원을 기부했다. 기부금은 장학금과 소외계층 지원사업 등에 쓰이고 있다. 올해는 더 늘고 있다는 게 재단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윤재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중소기업학회 회장)는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도 시혜 중심의 지원정책보다는 중장기적으로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무게 이동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