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내빈…막 내리는 한은 김중수號, "국제공조 업적에도 경기 대응 失機"…경직적 금리정책, 시장과 '엇박자'
“아쉬움? 먼 훗날 떠오를지 모르지만 아직은 생각할 여유가 없다.”

지난 4년의 임기를 돌아보며 13일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던진 한마디다. 이날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김 총재가 마지막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한 자리였다. 결론은 10개월째 금리 동결. 그를 쫓아다니던 ‘통화정책 실기’ 논란은 결국 만회할 기회가 없었다.

“한은 새 역사 쓰겠다”

김 총재가 통화당국의 수장을 맡은 것은 2010년 4월1일. 직접 쓴 취임사의 두드러진 머리말은 ‘G20(주요 20개국) 의장국 위상에 걸맞은 한국 중앙은행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나가자’는 것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국제금융 질서를 이끌어나가겠다는 원대한 포부였다.

그는 한은 출신이었던 전임 이성태 총재와 달리 통화정책 전문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초대 청와대 경제수석, 노무현 정부 시절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을 지낸 만큼 정부와 손잡고 ‘위기 극복’을 원활하게 해나갈 것으로 기대됐다. 2009년 0.2%까지 곤두박질친 경제성장률을 복구하는 게 과제였다. 금융위기 당시 풀린 유동성을 걷어내고 금리를 ‘정상화(인상)’하는 출구전략도 필요했다.

간단치 않았다. 취임 첫해 2%대였던 물가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금통위는 그해 7월 기준금리를 연 2.00%에서 2.25%로 인상한 것을 시작으로 다음해인 2011년 6월 3.25%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물가상승률은 그해 3월 한은의 물가목표 상한인 4%를 뛰어넘었다.

상처 입은 통화정책

출구전략에 시동을 건 지 얼마 안돼 미국 신용등급 하향 악재가 터졌다. 2011년 2분기부터 0%대 저성장에 돌입하자 금리 인하 요구가 빗발쳤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은 “경제상황이 이미 안 좋아지고 있는데 한은은 금리를 오히려 올리고 있었다”며 “원화가치도 올라 부담이 됐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2012년 7월부터 세 차례 금리를 내렸지만 적극적 경기대응을 원한 시장의 갈증을 달래기에는 뒤늦은 터였다. 작년 5월엔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경기부양책에 등떠밀려 금리를 내렸다는 비판까지 받았다. 그 직전까지 금리 동결을 강력하게 시사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금리 인하 한 달 뒤엔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양적완화 조기축소(테이퍼링)을 시사하면서 다른 방향을 보여줬다. ‘국제공조’를 강조해왔던 김 총재의 예측 능력은 상처를 입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김 총재는 재임 기간 통화정책을 선제적이기는커녕 너무 경직적으로 운용해 경기변화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 과정에서 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린 것은 더 큰 문제였다. 박형민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통화정책의 가장 기본인 예측가능성이 떨어졌다”며 “경제전망을 자주 제시해도 정확성이 떨어져 믿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억누르지 못한 가계부채

현재 물가상승률은 1.0%(2월)로 물가목표 하한(2.5%)을 밑돈다. 디플레이션 우려 속에 금리 인하론이 제기됐지만 이 역시 시기를 놓쳤다는 진단이 많다.

구조개선을 통해 부채 감축에 나선 미국 등과 달리 한국의 가계부채는 지난해 1000조원을 돌파했다. 더 늘어나지 않게 올해 안에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물가도 성장률도 정상궤도에 오르지 못한 현 상황에 대해 김 총재는 ‘정책실패가 아니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날 기자설명회에서 “국민의 물가 상승 기대심리는 2.9%에 달한다”며 “이를 안정시키는 게 중앙은행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급증한 가계부채를 한은의 책임으로 돌리는 데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그는 “가계부채가 위기로 불붙을 가능성은 작다”며 “(물가 상승이나 부채 탕감보다는) 경제성장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말했다.

소신이냐 불통이냐

그는 평소 “한은을 종사자의 조직이 아닌 국민의 조직으로 돌려주겠다”고 외쳤다. 취임 직후 직군제를 폐지하고 파격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조직 분위기를 쇄신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내부갈등은 미처 봉합되지 못한 상태다. 이 과정에서 나갔던 이주열 전 부총재가 차기 총재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새로운 긴장감이 형성됐다. 그간의 조직개편이 원상복귀될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이를 신경쓰듯 김 총재는 이날 “조직 개혁 때문에 4년간 힘들었지만 나중에 보면 빛이 더 클 것”이라며 “(앞으로도) 당연히 유지돼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는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공조가 중요하다며 4년간 18개국을 73차례 방문했다. G20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에 빠짐없이 참여해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한국의 발언권을 가져왔다. 국제기구와 주요국 중앙은행에 파견된 한은 직원은 2009년 5명에서 지난해 13명으로 늘었다. 임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김 총재가 한은 위상을 높이고 국제연구 성과도 높였다”고 평가했다.

한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김 총재의 4년은 소신이냐 불통이냐의 문제였다”며 “평가가 이처럼 엇갈리는 총재도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총재는 지난 4년을 ‘질풍과 격동의 시기’라고 표현했다. 가을엔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