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광고인 위상 높아져
광고인들에게 프랑스 칸 국제광고제의 심사위원을 맡는다는 게 어떤 의미냐고 물으면 이런 답이 돌아온다. 매년 6월 열리는 이 행사는 상의 권위, 출품작 수, 참관단 규모 등에서 다른 국제광고제를 압도하는 자타공인 세계 최대·최고 광고 행사로 꼽힌다. 따라서 심사위원의 위상 또한 독보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칸 광고제의 심사위원 자리를 꿰차는 한국 광고인들이 몇 년 새 부쩍 늘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해외 무대에서 존재감조차 미미했던 국내 광고계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전문가들은 풀이한다.
13일 광고업계에 따르면 올해 칸 광고제에 5명의 한국인이 심사위원으로 선정됐다. 광고인으로는 이현정 제일기획 미디어플래닝팀장, 김정아 이노션 수석크리에이티브디렉터(ECD), 박승욱 한컴 ECD, 광고주로는 장동훈 삼성전자 부사장과 박정규 동서식품 부사장이 참여한다.
이 팀장은 1995년 제일기획에 입사해 삼성전자, KT, 던킨도너츠, 코웨이, 풀무원 등의 광고집행 전략을 짜는 미디어플래너로 일했다. 그는 “회사는 물론 우리나라 광고계의 위상이 더 높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심사하겠다”고 말했다. 김 ECD는 1996년 제일기획으로 광고계에 입문, 2006년 이노션으로 옮긴 뒤 쏘나타 빗방울 편, 도미노피자 수지 편 등 대중에게 친숙한 광고를 여럿 만들었다.
국내를 대표하는 스타 광고인들 중에는 과거 칸 광고제 심사위원을 지낸 사람들이 적지 않다. ‘생각이 에너지다’(SK)로 유명한 박웅현 TBWA코리아 ECD를 비롯해 홈플러스 가상매장 광고로 2011년 한국인 최초로 칸 그랑프리(대상)를 받은 이정락 SK플래닛 M&C부문장, 대한항공의 ‘어디까지 가봤니’와 LG전자 등의 히트 광고를 만든 황보현 HS애드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CCO·상무) 등이 그들이다.
매년 3만건 이상이 출품되는 칸 광고제에는 부문별로 20~30명씩, 총 17개 부문에서 300명 이상이 심사를 맡는다. 나라별 심사위원 수는 그 나라 광고산업의 위상을 보여주는 척도로 통한다. 최근 3년간 수상 실적과 출품작 수 등에 따라 할당되기 때문이다.
김윤호 제일기획 코퍼레이트브랜딩팀장은 “한국에 배정된 심사위원 수는 과거 고작 1명 정도에서 2012년부터 4~5명으로 크게 늘었다”며 “2010년대 들어 국내 업체들이 좋은 수상 실적을 올리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칸 광고제 심사위원들의 업무 강도는 영예만큼이나 높다. 다른 광고제와 달리 온라인 심사를 하지 않는 게 원칙이어서 모든 심사위원이 나흘 동안 칸에 모여 부문별로 적게는 1000건, 많게는 3000건 이상의 출품작을 모두 보면서 의견을 조율한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