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복원전문가는 비행 폭격보다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1985년 이탈리아의 미술사학자 페데리코 제리(1921~1998)가 한 대학 강연에서 한 말이다. “비록 세월이 작품을 파괴하고 피해를 입힌다 해도 복원전문가의 그것보다는 덜하다”(‘이미지의 이면’ 중)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새로운 작품을 수집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지만 사실 수집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보존과 복원의 문제다.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부식을 막고 빛에 의한 색채 손상을 최소화는 일은 미술관 종사자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다.

지금은 과학적인 보존처리 기술이 상당 수준 발달했지만 지난 두 세기 동안 잘못된 보존처리로 인한 미술품 피해는 전쟁으로 인한 재앙보다 끔찍했다.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초상화가 안토넬로 다 메시나의 ‘구세주’는 그 대표적인 예다. 어느 교회당 안에 걸렸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예수 그리스도가 축복을 내리는 순간을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축복을 내리는 오른손 위에 또 하나의 희미한 손이 보인다. 잘못된 보존 처리가 남긴 상처다. 작가는 처음에 예수의 손을 목 부분에 묘사했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덧칠을 하고 손의 위치를 조금 아래로 조정해 다시 그린 것이다.

아마도 오랜 시간에 걸쳐 교회 내 양초가 연소하면서 그림 위에 그을음이 내려앉자 교회 관계자가 그림을 깨끗한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강력한 보존 처리를 행한 것이 틀림없다. 전통적으로 잿물이나 가성소다가 그림 청소용 물질로 많이 사용됐다. 이 부식성 물질로 그림 표면을 닦아내면 처음에는 원래의 화려한 색깔을 되찾은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작품을 파멸로 이끈다. 특히 ‘구세주’에서는 너무 많은 잿물로 닦아내 아래층이 드러난 것이다.

이런 잘못된 보존 처리는 조각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오랜 세월 땅속에 묻혀 있다 발견된 고대 조각이나 야외에 오랫동안 노출된 조각상들이 염산이라는 강력한 부식성 물질로 세척됐다. 염산 성분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조각상에 치명적이다. 조각상이 풍기는 예스러운 맛의 형성을 방해한다. 루브르 등 유수의 박물관에서 만나는 고대 조각상들이 방금 조각가의 작업실에서 완성된 것처럼 깨끗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술 더 떠 19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고대 조각상이 팔이 잘려진 형태로 발견되면 불규칙한 표면을 잘라내거나 갈아내고 새 팔을 달아주기까지 했다. 바티칸박물관의 ‘벨베데레의 아폴론’상은 그 중에서도 압권이다. 이 대리석상은 1509년 발굴 당시 양손이 떨어져나간 상태였는데 1523년 이를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이 새 손을 달아줬다.(이 팔들은 1924년 제거됐다)

정성스레 ‘염산 목욕’까지 시켜줬다. 그래서 이 멋진 신상은 오늘도 마치 금방 제작된 조각상처럼 말쑥한 모습으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 1999년 미켈란젤로의 걸작인 시스틴성당의 천장화 ‘천지창조’의 복원이 완료됐다. 그림은 본래의 색채를 되찾았지만 예스러운 맛은 사라졌다. 차라리 그냥 두는 편이 나았다는 의견도 분분했다. 최고의 복원전문가가 장기간에 걸쳐 작업한 것인데도 말이 많은 걸 보면 미술품의 보존과 복원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오랜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오늘의 보존전문가들이 내린 결론은 이렇다. “개입을 최소화하라” “미래의 복원 전문가가 제거할 수 있는 재료와 기술로 복원하라” “관련 작품에 대한 자료를 완벽하게 확보하라” 자신 없으면 손대지 말라는 것과 현재의 실수를 후대에 교정할 수 있게 하라는 말이다.

오랜 세월에 걸친 뼈아픈 복원술의 역사는 우리에게도 진한 교훈을 남긴다. “자신이 완수할 수 없는 일은 후임자를 위해 남겨 두라.”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