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로마 공화정의 절대권력' 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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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왔노라(Veni), 보았노라(Vidi), 이겼노라(Vici).”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인이자 군인인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7년 젤라(현재 터키 질레)에서 반군을 제압한 뒤 본국에 보낸 승전보다. 로마의 정적들에게 보내는 자신감에 가득찬 이 말은, 세계제국 로마를 호령한 그의 일생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최후는 비참했다.
카이사르는 기원전 100년 유서 깊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사제직을 수행하던 그는 숙부 마리우스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바뀐다. 로마 권력을 두고 마리우스와 대립하다 패해 물러났던 술라가 재기해 카이사르를 처형 명단에 올려놨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는 도주하다 군입대를 선택, 로마 변방 각 속국에서 군복무를 이어갔다.
술라 사후 로마로 복귀한 그는 변호사이자 웅변가로 활약했다.
기원전 60년대 말부터는 크라수스, 폼페이우스와 함께 소위 ‘삼두정치’로 수년간 로마 정계를 호령했다. 갈리아 제국(유럽 남부)을 정복하고 브리타니아(영국)와 전쟁을 치르면서 독보적 입지를 굳혔다. 기원전 49년 내전에서는 정적들을 모두 처단했다. 이후 무소불위 권력자로 로마 정치·사회 전반에 대한 광범위한 개혁에 착수했다. 현재 달력의 원조가 그가 만든 율리우스력이다.
그의 집권 기간은 길지 않았다. 기원전 44년 3월15일, 원로원 회의에 들어가던 중 양자 브루투스를 비롯한 반대파에게 수십 번 칼에 찔려 살해당했다. “브루투스, 너마저…”라고 알려진 외마디 비명을 남긴 채.
■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기원전 100년 출생
-기원전 69년 공화정 재무관
-기원전 54년 갈리아 정복
-기원전 53년 삼두정치 결렬
-기원전 49년 내전 승리
-기원전 44년 쿠데타로 피살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인이자 군인인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7년 젤라(현재 터키 질레)에서 반군을 제압한 뒤 본국에 보낸 승전보다. 로마의 정적들에게 보내는 자신감에 가득찬 이 말은, 세계제국 로마를 호령한 그의 일생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최후는 비참했다.
카이사르는 기원전 100년 유서 깊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사제직을 수행하던 그는 숙부 마리우스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바뀐다. 로마 권력을 두고 마리우스와 대립하다 패해 물러났던 술라가 재기해 카이사르를 처형 명단에 올려놨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는 도주하다 군입대를 선택, 로마 변방 각 속국에서 군복무를 이어갔다.
술라 사후 로마로 복귀한 그는 변호사이자 웅변가로 활약했다.
기원전 60년대 말부터는 크라수스, 폼페이우스와 함께 소위 ‘삼두정치’로 수년간 로마 정계를 호령했다. 갈리아 제국(유럽 남부)을 정복하고 브리타니아(영국)와 전쟁을 치르면서 독보적 입지를 굳혔다. 기원전 49년 내전에서는 정적들을 모두 처단했다. 이후 무소불위 권력자로 로마 정치·사회 전반에 대한 광범위한 개혁에 착수했다. 현재 달력의 원조가 그가 만든 율리우스력이다.
그의 집권 기간은 길지 않았다. 기원전 44년 3월15일, 원로원 회의에 들어가던 중 양자 브루투스를 비롯한 반대파에게 수십 번 칼에 찔려 살해당했다. “브루투스, 너마저…”라고 알려진 외마디 비명을 남긴 채.
■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기원전 100년 출생
-기원전 69년 공화정 재무관
-기원전 54년 갈리아 정복
-기원전 53년 삼두정치 결렬
-기원전 49년 내전 승리
-기원전 44년 쿠데타로 피살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