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가 설계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가우디가 설계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바로셀 로나노바 아카리아비치
바로셀 로나노바 아카리아비치
스페인이 자리잡은 이베리아 반도는 아프리카와 서유럽, 지중해와 대서양 사이의 거대한 땅덩어리다. 기독교와 이슬람, 유럽과 아랍의 문화 및 유산이 만나는 스페인의 동서남북에는 이들 요소가 제각각 독특한 비율로 섞여 있다. 정열적인 춤과 음악뿐만 아니라 하나의 국가에 속해 있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들이 곳곳에 산재한다. 당분간 가장 흥미로운 여행 버라이어티로 회자될 것으로 예상되는 TV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의 행선지가 스페인이라는 사실도 놀랍지 않다. 유쾌한 할아버지들의 스페인 로망을 따라가보는 것은 어떨까.
대규모 클럽과 성당이 있는 마드리드 로스 레예스.
대규모 클럽과 성당이 있는 마드리드 로스 레예스.
나른한 낮과 활기찬 밤, 마드리드


마드리드의 벼룩시장 메르카디요.
마드리드의 벼룩시장 메르카디요.
스페인의 한가운데 자리한 마드리드는 황무지에 둘러싸인 도시다. 해발고도 600m인 이 지역이 스페인의 수도로 정해진 것은 16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오랜 세월 스페인 정치와 교통의 중심지로 발전해왔지만, 이곳의 템포는 다른 나라의 대도시들과 사뭇 다르다. 마드리드 시민들은 아무리 바쁘더라도 점심 식사를 위해 충분한 시간을 낸다. 오후 2~5시의 ‘시에스타’ 타임이다. 저녁 식사를 하기 전 식전주인 아페리티프를 즐기는 것도 중요한 일과다. 마드리드의 진정한 밤은 결국 늦은 시간에야 찾아온다. 레스토랑이 가장 바쁜 시간은 오후 10시 무렵이고, 영화관 역시 오후 10시 직후의 상영 시간에 가장 붐빈다.

마드리드 특유의 생활 리듬은 스페인의 뜨겁고 건조한 기후에서 비롯됐다. 태양이 작렬하는 낮 시간대에 쉬는 대신 중요한 업무와 약속은 대지의 열기가 식은 저녁 이후로 미루는 것이 이곳의 오랜 전통이다. 여행자들은 도시를 둘러보기에 앞서 마드리드의 나른한 낮과 격렬한 밤에 먼저 적응할 필요가 있다.

이른 봄, 마드리드의 기후는 연중 어느 때보다 도시를 거닐기에 적합하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전신을 감싸는 계절, 여행의 출발지는 마드리드의 상징인 마요르 광장이다. 1580년 펠리페 2세가 군림하던 시절 착공한 마요르 광장은 한때 투우와 이교도의 화형 장소, 대관식 현장으로 사용됐으나, 이제 격정과 영광의 흔적은 찾아볼 길이 없다. 광장 중앙의 펠리페 3세 기마상을 중심으로 광장 곳곳에 포진한 멋진 상점과 카페들은 수많은 행인과 예술가들로 분주하다. 라스프로 폐품 경매 시장의 좁은 골목길은 이방인의 흥미를 자극하고, 저녁 무렵 레티로 공원의 산책로에서 느릿하게 걸어다니는 시민들 틈에 섞여보는 것도 즐겁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화랑 프라도

돈키호테 등장
돈키호테 등장
일정을 재촉하기보다 눈에 띄는 카페에 들어가 한낮의 상그리아를 느긋하게 즐겨보는 것도 여행자의 책무다. 와인에 소다수와 레몬즙을 넣어 희석시킨 상그리아는 스페인의 대중적인 술이다. 와인 향기가 숨결에 배어들 즈음 광장 한가운데에서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구슬픈 선율이 들려온다. 마요르 광장 주변에선 스페인 전통 예술인 플라멩코를 감상할 수 있는 공연장 ‘타블라오’ 역시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빠른 리듬과 현란한 기타 연주를 배경으로 화려한 주름 치마를 격렬하게 흔드는 무희의 춤에는 집시들의 오랜 회한과 서글픈 감성이 뒤엉켜 있다. 대부분의 공연은 오후 10시 이후에 시작된다. 밤이 오기 전까지 방문해야 할 목적지들은 아직 남아 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자리잡은 몬테 도 고조에서는 순례자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스페인관광청 제공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자리잡은 몬테 도 고조에서는 순례자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스페인관광청 제공
마요르 광장 인근의 프라도 미술관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화랑’ ‘유럽의 3대 미술관’으로 불린다. 스페인 왕실이 수집한 8000점 이상의 미술품은 자국의 거장들을 넓게 아우른다. 스페인 3대 화가로 불리는 엘 그레코, 고야, 벨라스케스의 대표작들은 원화 특유의 박력으로 시선을 오래 붙든다. 액자 밖의 풍경으로 마드리드의 위엄 있는 전통을 확인하고 싶다면 도시 동쪽의 오리엔테 궁전으로 향하자. 1755년 완공된 궁전은 현재 스페인 왕의 공식 거처다. 2800여개의 내실 중 50여개만이 외부에 공개된다. 화려한 연회가 열리는 다이닝 홀과 중국 양식으로 꾸민 가스파리니 방, 곳곳에 장식된 정교한 태피스트리로부터 스페인 왕국의 황금기를 짐작해볼 수 있다.
바르셀로나 박물관
바르셀로나 박물관
예술과 건축의 성지,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는 현대적이고도 신비로운 매력으로 가득한 도시다. 바르셀로나가 속한 카탈루냐는 원래 스페인보다 프랑스와 더 친밀한 지역이었다. 지금도 이곳 사람들은 스페인어보다 옛 프로방스 말투에 더 가까운 카탈루냐어를 주로 사용한다. 개성이 짙은 지역 문화 위에 국제적인 명성을 덧붙인 주역은 바르셀로나에서 활동한 예술가들이었다. 파블로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 후안 미로 등 미술계의 거장은 물론 전설적인 첼로 연주자 파블로 카잘스, 스페인을 대표하는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는 이 도시를 예술의 고장으로 완성했다.

바르셀로나 북쪽 언덕의 구엘공원.
바르셀로나 북쪽 언덕의 구엘공원.
가우디는 바르셀로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다. 유명한 성당과 건축물뿐 아니라 아파트 등의 주거 공간과 길가의 벤치, 가로등에 이르기까지 바르셀로나에는 가우디의 숨결이 닿지 않은 공간이 없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건물은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이다. 가우디가 설계하고 직접 건축 감독을 맡은 이 성당은 착공 이후 130여년이 흐른 지금도 계속 공사 중이다. 뾰족한 종탑과 첨탑 18개가 신비롭게 솟은 성당 내부로 들어서면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쏟아지는 색색의 빛이 시야를 황홀하게 어지럽힌다. 한편 구엘공원은 가우디의 트레이드마크인 유선형 디자인과 바르셀로나 항구를 동시에 목격할 수 있는 곳이다. 원래는 주민들의 거주지로 계획됐으나 공사가 중단되며 시민들을 위한 공공 장소로 거듭났다.

풍성한 음식과 축구의 고장

바르셀로나에 있는 바르셀로네타 해변 전경.
바르셀로나에 있는 바르셀로네타 해변 전경.
출렁이는 파도처럼 굽은 벤치들 사이를 거닐다 태양을 눈부시게 반사하는 지중해의 수면을 두 눈에 담는다. 피카소와 미로의 초기작들까지 광범위하게 망라한 미술관들 역시 잊어서는 안 된다. 건축물과 미술관들 사이에는 바르셀로나의 대표적 번화가들이 자리한다. 콜럼버스 탑과 카탈루냐 광장 사이로 이어지는 람블라스 거리에는 키 큰 플라타너스들과 레스토랑, 꽃가게가 도열해 있다. 정부의 인증을 받은 노상의 예술가들은 유쾌한 퍼포먼스를 벌이고, 거리 중턱쯤에 있는 보케리아 시장은 현지 셰프와 식도락가들로 붐빈다. 커다란 하몽과 신선한 어패류, 오렌지와 올리브까지 신선한 식재료들이 진열된 풍경은 이방인의 침샘마저 맹렬하게 자극한다. 피카소 미술관이 들어선 고딕 지구는 도시에서 가장 고풍스러운 지역이다. 수백년 전 지어진 석조 건물들 사이로는 중세의 공기가 도도하게 흐른다. 성당과 사원 등 역사적 장소들뿐 아니라 매혹적인 수공예품 상점과 고급 레스토랑들이 발길을 유혹한다.

[여행의 향기] 꽃보다 스페인…기독교·이슬람, 유럽·아랍문화가 만든 하이브리드 '매력'
축구 팬이라면 도시의 건축 유산들을 제쳐놓고 캄프 누 스타디움부터 향하고 싶을 것이다. 캄프 누 스타디움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소속 FC 바르셀로나의 홈 구장이다. 메시, 푸욜, 사비 등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들을 거느린 FC 바르셀로나는 ‘바르샤’라는 애칭으로도 유명하다. 경기가 없는 날에는 구장과 박물관을 방문할 수 있다. 바르샤의 팬들은 기념품 가게의 방대한 진열품 사이에서 행복한 비명을 지를 것이 틀림없다.

정미환 여행작가 clarte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