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2009년부터 추진한 ‘음식점 위생등급제’가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점의 위생 상태를 공인해 시민들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지만 외식업계의 반발에 따른 ‘등급 부풀리기’로 오히려 혼란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위생등급제가 내년부터 전국으로 확대되지만 90%가 넘는 소규모 음식점은 위생 사각지대에 방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외식업계 반발에 등급 표시 조정

서울시는 ‘음식점 위생등급제’ 참여
최하위에 A…유명무실한 '음식점 위생등급제'
희망 업소를 다음달 30일까지 공개 모집해 올해 1100곳을 공인할 계획이라고 16일 발표했다.

서울시는 2009년부터 자율 신청 업체 5000곳을 대상으로 화장실·주방 위생, 시설 청결 등을 기준으로 점수를 산정하고 있다. 평가 결과에 따라 90점 이상 음식점에는 AAA, 80~89점 AA, 70~79점은 A(사진)가 부여된다. 70점 미만은 등급을 받을 수 없다.

문제는 최하위 등급이 A인데도 시민들이 최우수 음식점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음식점 위생등급제가 보편화된 미국과 유럽에선 A B C 순으로 등급을 매긴다.

도혜자 서울시 식품안전과장은 “A~C로 등급을 매길 경우 하위 등급을 받은 음식점은 시민들이 이용을 꺼릴 수밖에 없다”며 “외식업계의 반발을 수용해 등급을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최하위 등급인 A를 받은 한 레스토랑 주인은 “음식점에 붙은 ‘위생 A등급’이라는 포스터를 보면 대부분의 손님이 S 다음이거나 최우수 등급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2012년 말 기준으로 서울시에 위생등급제 공인을 신청한 4116곳의 음식점 중 최고 등급인 AAA는 18.7%인 771곳이다. AA는 1276곳(31%), A는 1046곳(25.4%)이다. 등급을 받지 못한 곳이 전체의 24.9%인 1023곳에 달한다.

위생 상태에 자신 있다며 신청한 중대형 음식점임에도 불구하고 등급조차 받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 음식점이 등급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릴 의무는 없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소규모 음식점은 사실상 방치

내년부터는
최하위에 A…유명무실한 '음식점 위생등급제'
전국의 면적 300㎡ 이상 일반음식점에 등급을 부여하는 ‘음식점 위생등급제’가 시행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4대 악 중 하나로 불량식품을 꼽자 주무기관인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서울시와 협의해 위생등급제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위생등급은 서울시와 마찬가지로 AAA, AA, A로 나뉜다.

내년부터 위생등급제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300㎡ 이상 일반음식점은 1만3000곳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의 일반 음식점이 61만5679곳인 점을 고려하면 0.5%에 불과하다. 위생등급제는 2016년 241~329㎡, 2017년 191~240㎡, 2018년 166~190㎡ 규모의 음식점을 대상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면적 166㎡ 이상 음식점까지 대상이 확대되는 2018년에도 위생등급제가 적용되는 음식점은 5만7000곳으로,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국 음식점 중 90%가 넘는 166㎡ 미만 소규모 음식점의 위생상태는 사각지대로 방치되는 셈이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