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그림자 규제'가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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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춘 금융부장 hayoung@hankyung.com
손해보험업계의 요즘 관심은 삼성화재다. 삼성화재의 ‘용감함’이다. 용감함은 별것 아니다. 이달부터 영업용 및 업무용 자동차 보험료를 올리기로 한 결정이다. 불어나는 자동차 보험 적자를 감안하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용감함으로 불리는 것은 그 과정 때문이다. 삼성화재는 자동차 보험료를 조정하면서 금융당국과 상의하지 않았다. 그냥 규정에 따라 ‘자율’로 보험료를 조정했다고 한다. 뒤늦게 이를 안 금융당국이 노발대발했다는 후문이다. 업계에서 ‘용감한 삼성화재’라고 부르는 이유다.
증거도 흔적도 없는 규제
자동차 보험료 조정은 업계 자율이다. 인상 요인이 생기면 올리고, 인하 요인이 발생하면 내리면 된다. 사전 심사대상도 아니고, 신고 사항도 아니다. 보험개발원 등을 통해 조정폭이 적정한지를 검증받으면 그만이다. 현실은 아니다. 보험료 조정안을 갖고 “이렇게 조정해도 되겠습니까”라고 상의한 뒤 ‘오케이’ 사인을 받아야만 조정할 수 있다. 그것이 관행이다. 손보사들이 커지는 적자에도 불구하고 몇 년째 자동차 보험료를 올리지 못한 채 속앓이를 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는 암 덩어리”라고 말한 후 규제 혁파 논의가 활발하다. 금융당국은 금융 공기업과 유관기관 등의 내규나 모범규준 등에 숨어 있는 규제까지 10% 이상 걷어 내기로 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 13일 은행연합회 등 금융협회와 KB금융 등 지주회사 회장들을 불러 규제 완화 필요성을 당부하기도 했다.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금융업계 시각은 사뭇 다르다. 숨어 있는 규제를 걷어 낸다고 달라지는 건 별로 없을 것이란 냉소적 시각이 많다. 다름아닌 ‘그림자 규제’ 때문이다. 근거도 없이, 이른바 ‘창구지도’라는 명분으로 행해지는 그림자 규제가 없어지지 않는 한 금융산업이 자율성을 갖기는 요원하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그림자 규제는 보이지 않는 규제다. 아무런 증거나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금융회사를 금융당국의 뜻대로 이끄는 효과 만점인 규제다. 자동차 보험료 조정도 그런 경우다.
CEO 인선 때마다 나타나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인선 때마다 불거지는 ‘당국 개입설’도 대표적인 그림자 규제다. 회원사들이 뽑게 돼 있는 손해보험협회장 자리가 작년 8월 이후 7개월째 공석인 것도 그림자 규제가 작용한 탓으로 볼 수밖에 없다.
업계 자율로 돼 있는 금리나 수수료 조정도 마찬가지다. 은행들은 수수료 인상 요인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올리지 못한다. 금융당국이 눈을 부릅뜨고 있어서다. 그러다 보니 “내리는 건 자율(自律)이지만, 올리는 건 타율(他律)”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대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그림자 규제도 유명하다. 금융당국은 지원불가 결정을 내린 채권은행에 이런저런 방법으로 압력을 행사한다. 면책이 언급된 쪽지나 공문 한 장 없는데도, 해당 은행들은 하루아침에 ‘지원불가’에서 ‘지원’으로 돌아선다.
이렇게 보면 그림자 규제는 눈에 보이는 암 덩어리 규제보다 더 무섭다. 암 덩어리는 파내면 되지만 그림자는 파내지도 못한다. 그림자를 만든 주체가 사라지지 않는 한 수명도 영구적이다. 금융당국은 ‘숨어 있는 규제’를 찾아 없앤다고 부산을 떨기보다, 차라리 ‘그림자 규제’ 몇 개를 시범적으로 철폐하는 게 훨씬 나을 듯하다.
하영춘 금융부장 hayoung@hankyung.com
그런데도 용감함으로 불리는 것은 그 과정 때문이다. 삼성화재는 자동차 보험료를 조정하면서 금융당국과 상의하지 않았다. 그냥 규정에 따라 ‘자율’로 보험료를 조정했다고 한다. 뒤늦게 이를 안 금융당국이 노발대발했다는 후문이다. 업계에서 ‘용감한 삼성화재’라고 부르는 이유다.
증거도 흔적도 없는 규제
자동차 보험료 조정은 업계 자율이다. 인상 요인이 생기면 올리고, 인하 요인이 발생하면 내리면 된다. 사전 심사대상도 아니고, 신고 사항도 아니다. 보험개발원 등을 통해 조정폭이 적정한지를 검증받으면 그만이다. 현실은 아니다. 보험료 조정안을 갖고 “이렇게 조정해도 되겠습니까”라고 상의한 뒤 ‘오케이’ 사인을 받아야만 조정할 수 있다. 그것이 관행이다. 손보사들이 커지는 적자에도 불구하고 몇 년째 자동차 보험료를 올리지 못한 채 속앓이를 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는 암 덩어리”라고 말한 후 규제 혁파 논의가 활발하다. 금융당국은 금융 공기업과 유관기관 등의 내규나 모범규준 등에 숨어 있는 규제까지 10% 이상 걷어 내기로 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 13일 은행연합회 등 금융협회와 KB금융 등 지주회사 회장들을 불러 규제 완화 필요성을 당부하기도 했다.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금융업계 시각은 사뭇 다르다. 숨어 있는 규제를 걷어 낸다고 달라지는 건 별로 없을 것이란 냉소적 시각이 많다. 다름아닌 ‘그림자 규제’ 때문이다. 근거도 없이, 이른바 ‘창구지도’라는 명분으로 행해지는 그림자 규제가 없어지지 않는 한 금융산업이 자율성을 갖기는 요원하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그림자 규제는 보이지 않는 규제다. 아무런 증거나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금융회사를 금융당국의 뜻대로 이끄는 효과 만점인 규제다. 자동차 보험료 조정도 그런 경우다.
CEO 인선 때마다 나타나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인선 때마다 불거지는 ‘당국 개입설’도 대표적인 그림자 규제다. 회원사들이 뽑게 돼 있는 손해보험협회장 자리가 작년 8월 이후 7개월째 공석인 것도 그림자 규제가 작용한 탓으로 볼 수밖에 없다.
업계 자율로 돼 있는 금리나 수수료 조정도 마찬가지다. 은행들은 수수료 인상 요인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올리지 못한다. 금융당국이 눈을 부릅뜨고 있어서다. 그러다 보니 “내리는 건 자율(自律)이지만, 올리는 건 타율(他律)”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대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그림자 규제도 유명하다. 금융당국은 지원불가 결정을 내린 채권은행에 이런저런 방법으로 압력을 행사한다. 면책이 언급된 쪽지나 공문 한 장 없는데도, 해당 은행들은 하루아침에 ‘지원불가’에서 ‘지원’으로 돌아선다.
이렇게 보면 그림자 규제는 눈에 보이는 암 덩어리 규제보다 더 무섭다. 암 덩어리는 파내면 되지만 그림자는 파내지도 못한다. 그림자를 만든 주체가 사라지지 않는 한 수명도 영구적이다. 금융당국은 ‘숨어 있는 규제’를 찾아 없앤다고 부산을 떨기보다, 차라리 ‘그림자 규제’ 몇 개를 시범적으로 철폐하는 게 훨씬 나을 듯하다.
하영춘 금융부장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