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 지지자들 ‘흥겨운 댄스’ > 우크라이나 크림자치공화국의 항구도시 세바스토폴에서 친러시아 지지자들이 16일(현지시간) 주민투표 결과를 자축하며 춤추고 있다. 세바스토폴AFP연합뉴스
< 러 지지자들 ‘흥겨운 댄스’ > 우크라이나 크림자치공화국의 항구도시 세바스토폴에서 친러시아 지지자들이 16일(현지시간) 주민투표 결과를 자축하며 춤추고 있다. 세바스토폴AFP연합뉴스
16일(현지시간) 실시된 크림자치공화국 주민투표 결과 ‘러시아 합병’ 지지율이 96.7%에 달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서방과 러시아 간 갈등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서방의 러시아 경제제재와 이에 대응하는 러시아의 유럽 천연가스 공급 중단 등이 현실화될 경우 세계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크림 운명, 푸틴 손에 달려

AFP통신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이날 주민 투표에는 164만여명의 유권자 중 83%가 참여했다. 2012년 총선 투표율의 약 두 배다. 투표 결과가 발표된 뒤 수도 심페로폴의 레닌광장과 세바스토폴항구에는 수천 명의 친러 주민이 모여 러시아 국가를 부르며 환호했다. 세르게이 악쇼노프 크림 총리는 군중 앞에서 “우리는 고향(러시아)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크림자치공화국의 러시아 귀속 여부는 이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손에 달렸다. 푸틴 대통령이 주민투표 결과를 내세워 크림자치공화국의 러시아 합병을 밀어붙일지, 아니면 우크라이나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포기시키고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선에서 사태를 마무리 지을 것인지에 따라 국제 정세도 크게 바뀔 전망이다.

크림공화국 의회는 이날 결의안을 통해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러시아 귀속을 신청하기로 했다. 의회는 또 크림공화국 영내에 있는 모든 우크라이나 정부 재산을 자국 소유로 전환하는 한편 러시아 통화인 루블화를 제2 공식화폐로 지정했다. 병합 절차는 러시아 하원과 상원의 승인을 거쳐 푸틴 대통령이 서명하면 완료된다. 러시아 하원과 상원은 21일 크림 병합 문제를 심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크림 합병이라는 무리수를 강행할지는 미지수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이날 러시아와 크림자치공화국 지도부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는 등 러시아에 경제적, 외교적 압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성명을 통해 “미국과 서방은 투표를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경고한 데 이어 푸틴 대통령 핵심 측근을 포함한 정부 관계자 7명과 크림반도 분리주의 지도자 2명,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대해 자산 동결과 비자 발급을 중단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내렸다.

앞서 EU 외무장관들도 전날 크림자치공화국 주민투표 결과에 대한 대응책으로 13명의 러시아 지도부 및 8명의 크림자치공화국 지도부에 대한 추가 제재를 결정했다.

◆세계 경제 먹구름 오나

‘크림의 봄’이 ‘제2 아랍의 봄’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1년 북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들이 독재 정권을 축출하고 민주화의 꽃을 피웠지만 경제난으로 혼란이 지속되는 상황을 빗댄 것이다.

크림반도는 물과 전력의 80%, 가스의 65%를 우크라이나 본토에 의존하고 있다. 또 연간 총 관광객의 65%인 약 600만명이 우크라이나에서 넘어온다. 뿐만 아니라 크림자치정부의 연간 예산 12억달러(약 1조3000억원)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8억달러를 우크라이나 중앙정부에서 지원받고 있다.

서방 국가들이 본격적인 경제 제재에 나설 경우 러시아도 타격을 입게 된다. 러시아의 대 EU 수출은 국내총생산(GDP)의 15%에 달한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중앙정부가 지던 크림자치정부의 재정적자 부담도 러시아가 떠안아야 한다. 이 돈만 향후 5년간 1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과 유럽 기업들도 단기적인 충격을 감수해야 한다. 독일의 6000여개 기업은 러시아에 220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영국 은행들은 러시아 자금의 유입으로 이익을 얻고 있고, 프랑스는 군함 등 무기 수출 계약을 추진 중이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혼란이 신흥국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유가와 가스 등 원자재 가격의 변동성을 증폭시킬 경우 해외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곡물 가격도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6대, 동유럽 최대 곡물수출국이다. 수출 물량의 10%가 크림반도의 항구를 거친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천연가스 1개월물은 1.81% 급등했다. 밀도 약 1% 올랐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