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같은 대형 투자은행(IB)이 아닌 소형·독립 IB가 미국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점유율을 빠르게 높여 나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른바 ‘부티크 IB’들이 지난해 미국 M&A시장의 20%를 점유해 15억달러의 수수료 매출을 올렸다고 시장조사회사 딜로직을 인용,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008년 8%에 불과했던 시장 점유율이 6년 새 두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지난해 M&A를 통해 가장 많은 수수료를 벌어들인 톱20 IB 중 7개가 부티크 IB였다고 FT는 덧붙였다. 부티크 IB의 부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몰리스앤드코. UBS에서 투자은행가로 근무하던 켄 몰리스가 2007년 설립한 몰리스앤드코는 최근 기업공개(IPO)를 통해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몰리스앤드코의 시가총액은 2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부티크 IB들이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IB와 경쟁할 수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고객 수가 적다는 점이다. 딜이 있을 때만 고객을 만나는 대형 IB와 달리 평소에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사업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딜을 만들 확률도 높아진다.

예를 들어 2012년 소형 IB 라이언트리를 설립한 UBS 뱅커 출신 에이리어 버코프는 대형 케이블TV 업체 버진미디어와 리버티글로벌의 최고경영자(CEO)들을 뉴욕 햄튼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이 저녁 자리에서 버코프는 일본 사케와 시가를 즐기며 두 회사의 합병 딜을 이끌어냈다. 230억달러 규모의 딜로 라이온트리는 리버티글로벌 측의 주관사를 맡았다.

블레어 에프런 부티크 IB 센터뷰파트너스 대표는 “소형 IB는 공식적인 업무 외에도 고객사와 교류하면서 비즈니스 이해도를 높이는 게 가장 큰 특징”이라고 전했다. 센터뷰파트너스는 지난해 워런 버핏의 230억달러 규모 하인즈 인수전에 관여한 데 이어 올해 452억달러의 컴캐스트-타임워너케이블 인수전에도 참여하고 있다.

최근 저금리 추세로 인수자금 조달이 쉬워지면서 대형 IB의 자금력이 크게 중요하지 않아졌다는 점도 부티크 IB가 부상하는 이유다. 오히려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소형 IB ‘인재’들이 대형 IB의 ‘돈’보다 중요해졌다는 분석이다.

대형 IB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인재들이 기존 은행을 떠나고 있는 것도 이유다. 대형 IB에 있던 거물급 뱅커들이 나와 자신의 회사를 차리면 고객도 함께 따라오는 경우가 많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