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연대 성취상'의 황연대 씨 "24명째…상받은 선수 출세 소식이 가장 큰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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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 동계 패럴림픽서 '황연대 성취상' 시상
88년 오늘의 여성상 상금 쾌척해 제정
장애인 여의사 1호 버리고 평생 헌신
한국소아마비협회·정립회관 설립도
88년 오늘의 여성상 상금 쾌척해 제정
장애인 여의사 1호 버리고 평생 헌신
한국소아마비협회·정립회관 설립도
‘황연대 성취상’. 생소한 이름의 이 상은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최우수 선수가 받는 순금 메달 이름이다. 한국 최초 장애인 여의사 황연대 씨(76·사진)의 이름을 본떠 만들어졌다. 그가 의사직을 포기하고 장애인을 위해 헌신한 공로로 국내언론으로부터 수상한 ‘오늘의 여성상’ 상금을 1988년 서울 하계 패럴림픽에 쾌척하면서 제정됐다.
16일(현지시간) 열린 2014년 소치 동계 패럴림픽 폐회식에서 알파인스키의 토비 케인(호주), 스노보드의 비비안 멘텔-스피 등 남녀 선수 각각 1명이 이 상을 받았다. 이번 대회까지 총 24명이 목에 메달을 걸었다. 용기 결단 동기부여 등 패럴림픽 정신을 가장 잘 구현했다고 평가되는 남녀 선수 1명씩을 선정해 폐회식 때 수여한다.
시상식에 참석한 황씨는 “황연대 성취상이 이렇게 지속될지는 몰랐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패럴림픽에 오면 다른 나라 대표들에게 수상자들의 소식을 전해 듣는다”며 “목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고 큰 자동차 회사의 임원이 됐다는 등 선수들의 출세 소식을 들을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가 장애인 복지를 위해 일생을 헌신하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겪은 충격적 사건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이던 8세 때 다리를 전다는 이유로 일본인 교장으로부터 초등학교 입학을 거부당한 것. “두 발로 똑바로 서보라고, 뛰어보라고 했어요. 저는 그냥 울다가 입학 시험에 낙방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아버지에게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매를 맞았습니다. 울면서 좌절했기 때문이었어요. 아버지의 안경 사이로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것을 봤어요. 아버지가 우는 것을 본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이를 악물고 공부해 의사가 되고 장애인을 위해 계속 헌신하는 힘이 됐다고 털어놨다.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불편한 그는 1966년 한국소아마비협회를 세웠다. 1975년 정립회관을 설립했고 1993년까지 관장을 지내며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체육 시설을 제공했다. 1991~1995년까지 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을 맡아 행정가로도 활동했다.
올 동계 패럴림픽 남자부 수상자인 케인은 기자회견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데다가 황연대 성취상까지 받아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성취상 수상이 금메달보다 훨씬 더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여자 수상자인 멘텔-스피는 “너무나 자랑스럽다”며 “패럴림픽 출전자들이 세계에 많은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고히 믿는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16일(현지시간) 열린 2014년 소치 동계 패럴림픽 폐회식에서 알파인스키의 토비 케인(호주), 스노보드의 비비안 멘텔-스피 등 남녀 선수 각각 1명이 이 상을 받았다. 이번 대회까지 총 24명이 목에 메달을 걸었다. 용기 결단 동기부여 등 패럴림픽 정신을 가장 잘 구현했다고 평가되는 남녀 선수 1명씩을 선정해 폐회식 때 수여한다.
시상식에 참석한 황씨는 “황연대 성취상이 이렇게 지속될지는 몰랐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패럴림픽에 오면 다른 나라 대표들에게 수상자들의 소식을 전해 듣는다”며 “목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고 큰 자동차 회사의 임원이 됐다는 등 선수들의 출세 소식을 들을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가 장애인 복지를 위해 일생을 헌신하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겪은 충격적 사건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이던 8세 때 다리를 전다는 이유로 일본인 교장으로부터 초등학교 입학을 거부당한 것. “두 발로 똑바로 서보라고, 뛰어보라고 했어요. 저는 그냥 울다가 입학 시험에 낙방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아버지에게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매를 맞았습니다. 울면서 좌절했기 때문이었어요. 아버지의 안경 사이로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것을 봤어요. 아버지가 우는 것을 본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이를 악물고 공부해 의사가 되고 장애인을 위해 계속 헌신하는 힘이 됐다고 털어놨다.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불편한 그는 1966년 한국소아마비협회를 세웠다. 1975년 정립회관을 설립했고 1993년까지 관장을 지내며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체육 시설을 제공했다. 1991~1995년까지 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을 맡아 행정가로도 활동했다.
올 동계 패럴림픽 남자부 수상자인 케인은 기자회견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데다가 황연대 성취상까지 받아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성취상 수상이 금메달보다 훨씬 더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여자 수상자인 멘텔-스피는 “너무나 자랑스럽다”며 “패럴림픽 출전자들이 세계에 많은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고히 믿는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