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한화투자증권은 '미련이 상처를 남긴다'라는 제목의 현대미포조선 분석 보고서에서 향후 6개월간 투자의견을 '시장 비중'에서 '매도'로 하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실적 부진과 수주경쟁 심화에 주가가 올 들어 10% 넘게 하락했으나 더 이상 이마저도 버티기 힘들다는 게 이유였다. 해당 회사 주식을 '팔아 치우라'고 권유한 보고서는 삼성엔지니어링(메리츠) 이후 5개월 만이다.
2010년 이후 매도 의견이 나온 상장사는 삼성엔지니어링(메리츠) GS건설(메리츠), 삼성카드(토러스), 대우증권(HMC) 등 단 4곳.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기업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면 탐방 금지나 투자은행 업무에서 일감을 못 얻는 등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증권사들도 전례없는 긴 불황을 겪으면서 생각을 바꾸고 있다. 증시를 떠나는 투자자들을 붙들기 위해서 기업에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튀려고 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지만 '용감하다' '셀을 외쳐도 찾는 사람들 있겠다'는 평가도 많다"고 전했다.
이날 매도 보고서를 낸 한화투자증권은 전체 중립 및 매도 투자의견 비중을 4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안성호 기업분석파트장은 "기존 관행을 벗어나는 과정이 부담스러운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나 이러한 노력이 궁극적으로 투자자 보호를 위한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증시에서 눈높이를 낮춘 보고서들이 많아졌다.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매도의견 상향 건수(70건)보다 하향 건수(97건)가 더 많다. 최근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보고서에서 기업설명(IR) 노력의 부재가 해당 회사의 리스크 요인이라고 이례적으로 꼬집기도 했다. 해당 식품업체가 시장 지배력을 무기로 투명한 정보 공개를 게을리 한다는 비판이었다.
롱숏펀드 인기에 매도 목소리에 대한 갈증이 높아진 것도 배경으로 꼽힌다. 롱숏펀드는 저평가된 주식을 사고 고평가된 주식을 공매도하는 펀드다. 제로인에 따르면 국내 롱숏펀드 규모 2조4000억 원으로 연초 이후 지난 14일까지 유입된 자금만 6600억 원이 넘는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현실적으로 애널리스트는 펀드매니저들의 수익률을 높여줘야하는 살 수 있는 '을'의 입장"이라며 "최근 운용사 요청자료에 매도 종목은 기본으로 있는 만큼, 팔 만한 종목을 찝어줘야 신뢰를 얻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물론 '매도'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내기 힘든 구조가 하루 아침에 바뀌기 힘들 것이란 의견도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60% 업사이드(수익률 상승 여력)짜리 보고서에서는 '그럴 수 있겠구나'하면서 -10%의 셀 리포트에 대해선 광분하는 증권업 안팎의 인식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증권업계의 자성과 더불어 기업이 상장사로서의 책임감도 높여야 고질적인 관행이 사라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경닷컴 이하나 기자 l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