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 및 우주 팽창 가설을 입증하는 데 쓰인 남극 아문센-스콧 기지의 전파관측장비 바이셉2. 세계 각국 천체물리학자로 이뤄진 프로젝트 연구팀은 바이셉2를 이용해 우주 급팽창 흔적인 중력파를 찾아냈다. 연합뉴스
빅뱅 및 우주 팽창 가설을 입증하는 데 쓰인 남극 아문센-스콧 기지의 전파관측장비 바이셉2. 세계 각국 천체물리학자로 이뤄진 프로젝트 연구팀은 바이셉2를 이용해 우주 급팽창 흔적인 중력파를 찾아냈다. 연합뉴스
138억년 전 빅뱅(대폭발)과 급팽창을 통해 우주가 탄생했다는 가설을 입증할 증거가 최초로 발견됐다.

미국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연구센터는 17일(현지시간) 인터넷 생중계로 기자회견을 열고 일종의 전파망원경인 ‘바이셉2(BICEP2)’를 이용해 우주 탄생의 핵심 증거가 될 ‘중력파’를 탐지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빅뱅 및 우주팽창 가설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점이었던 우주가 대폭발로 찰나의 순간에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해 우주를 형성했다는 개념이다. 1916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발표 이후 이를 증명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는데 98년 만에 핵심 증거를 찾았다는 게 과학계의 평가다. 존 코백 하버드대 교수는 “중력파를 탐지하는 것은 천체물리학계의 오랜 숙원이자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며 “우주의 탄생을 이해하는 지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력파 탐지 성공

세계 각국 천체물리학자로 이뤄진 프로젝트 연구팀은 지난 3년간의 노력 끝에 남극에 설치한 바이셉2를 이용해 중력파인 ‘B-모드 패턴’을 찾아냈다.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지면 동심원 모양의 물결이 사방으로 퍼지듯 우주가 급팽창할 때도 흔적이 생기는데 이게 중력파다. 질량을 가진 물체가 가속 운동을 할 때 나오는 파동으로 일정한 패턴을 갖고 모든 공간에 퍼져 나간다. 이론적으로만 설명하던 중력파를 직접 검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발견한 패턴은 시공간의 뒤틀림을 직접 측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파동의 모습을 실제로 형상화한 첫 사례로 평가받는다. 후속 연구를 통해 중력파라는 것이 최종 확인되면 신호 정도를 비교해 우주의 빅뱅이 어디서 발생했는지 추적할 수 있고, 얼마나 오래 전에 어떤 속도로 우주가 팽창했는지 계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빅뱅 후 급팽창'…138억년前 우주탄생 비밀 풀 증거 찾았다
이번 연구에는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연구센터를 비롯해 스탠퍼드대, 스탠퍼드선형가속기센터 국립연구소,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 캘리포니아공대, 미네소타대 등이 참여했다. 관련 연구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에 제출돼 심사 절차를 밟고 있다.

○아인슈타인 이후 98년 만의 결실

중력파 연구의 출발점은 아인슈타인이다. 그는 중력의 정체를 ‘시간과 공간이 일체가 돼 이루는 시공간(spacetime)의 뒤틀림’으로 파악하는 일반상대성이론을 만들었다. 우주 생성 가설이 빅뱅 이론으로 발전한 것은 50여년 후다. 미국 벨연구소의 아르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은 1965년 안테나로 초단파 잡음을 포착하면서 우주 빅뱅 이론을 뒷받침할 ‘우주배경복사(CMBR)’ 개념을 제시했다. CMBR이 빅뱅의 잔광이자 우주 팽창의 흔적이라는 개념이다.

빅뱅 가설로 생긴 우주가 어떻게 커졌는지 설명하는 우주 팽창(인플레이션) 이론을 최초로 주장한 사람은 앨런 구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교수다. 그는 1980년 빅뱅이 발생한 후 찰나의 순간에 우주가 급팽창했다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존 코백 교수는 중력파를 규명하는 데 주력해온 학자다. 2002년 우주배경복사에 관한 논문을 발표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고 관측장비인 바이셉2 개발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남극에 23번이나 머물며 연구한 끝에 이번 성과를 이끌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BBC는 이번 연구와 관련, 과학계의 반박과 검증 과정이 이어지겠지만 결함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노벨상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평가했다.

이번 발견에 대해 국내 천체물리학계도 흥분을 감추지 않고 있다. 송용선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우주 초기 중력파는 인플레이션이 존재했다는 거의 유일한 직접적인 증거”라며 “이번 관측으로 우주 탄생 가설을 실제 입증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 중력파

gravitational waves. 질량을 가진 물체가 고속 운동을 할 때 방출하는 에너지 파동. 물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퍼져 나가듯 질량이 있는 물체가 움직이면 그 물체를 중심으로 시공간이 움직이며 파동이 생긴다는 개념이다. 중력파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시작으로 그 존재를 추정해왔고 이번에 처음으로 탐지하는 데 성공했다.

■ 바이셉2

중력파를 탐지하기 위해 남극 아문센-스콧 기지에 설치한 일종의 전파망원경. 일반 망원경에 비해 정밀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편광신호까지 탐지한다. 전자기파를 탑지해 그 속에서 미세한 편광 패턴을 분석해낼 수 있다. B-모드 패턴은 바이셉2가 처음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 중력파다. 남극에 설치한 이유는 온도와 습도가 낮고 대기 불안정성도 가장 덜하기 때문이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