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新유교? 유교의 산업화로
유교냐 유학이냐 논쟁으로 시작했다. 유서 깊은 전국 향교의 전교와 서원의 어른들은 현하지변을 토했다. 관광전문가 좌장이 없었다면 종일 이어질 담론이었다. 바뀐 주제는 정부 지원. 비슷한 요구들이 잇따랐다. 지난주 ‘유교 신문화 창조와 유교문화 활성화’ 토론회에서였다. 현대화 논의는 위기감의 발로였다. 국고지원을 바라는 노유들에게선 어버이 국가론이 엿보였다. 하지만 현대 국가는 자애의 어머니가 아니다. 국가의 보살핌은 독재와 양면도 이룬다.

유교의 활성화로 다양한 안이 제시됐다. 하지만 신(新)자 하나 붙인다고 바뀔 근본이 아니다. 해법은 유교의 산업화다. 산업화라면 아직 알레르기 반응도 있다. 한국의 뿌리 정신에 돈치장하겠다고? 불학들의 무례에 끝이 없도다! 이런 식이면 앞길은 깜깜하다. 규장각 서고에서 박제로 남지 않으려면, 다음 세대에까지 유교를 전수하려면, 향교와 서원을 현대적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려면, 그 길이다.

정부지원에 의존? 규제간섭만

산업화를 도모하자는 취지는 명료하다. 자본이 자유롭게 투입되게 하고 인재도 몰리게 해 경제적 성과를 창출하자는 것이다. 돈을 투자해 새 문화를 창조하는 시스템이래도 좋다. 길을 트면 인문학 일자리도 나온다. 산업화에 매진하면 정부에 목맬 필요도 없다. 유림은 거듭 호소했지만 복지예산 100조원 시대에 문체부는 힘이 없다. 더 중요한 건 정부예산이란 하나가 나가면 간섭은 열이고, 백을 지원하는 순간 감시감독은 천이 된다는 점이다. 정부지원은 늘 규제행정의 출발이었다. 사회의 스승 성균관장이 횡령 혐의로 검찰에 불려간 민망한 사건도 나랏돈을 공돈인 양 여긴 오해에서 빚어졌다.

유림이 앞서 산업화를 선언하고 유교산업지원법이라도 만들면 해묵은 민원들도 풀린다. 교통 좋은 서원에 교양강좌와 햄버거 매장의 병립이 안되나. 동재서재에 와이파이 팡팡 터지는 카페 설치가 나쁜가. 그래야 젊은이가 몰린다. 가령 레저업계, 교육계의 자본과 인력은 은행나무 그늘의 한옥을 현대화해낼 것이다. 그렇게 새 배움터가 되고 휴식처도 된다.

자본·인재의 투입, 새문화 창출

엔터테인먼트의 산업화 없이는 싸이도 걸그룹도 없었다. 방송출연 중개료를 변호사법으로 막는 식이었다면 문화한류도 방송산업도 불가능했다. ‘스포츠는 신성해!’라며 산업화를 막았다면 프로야구만이 아니라 피겨퀸 김연아도 없다. 세계 1등, 스마트폰만 산업화의 성과가 아니다. 재건축·재개발도 산업화 프로세서로 발전했다. 그 결과가 도시의 진화다. 당연히 산업화를 추진했어야 할 의료가 공영의 도그마에 매몰된 결과가 어떤가. 고르디우스 매듭 같은 모순덩어리 속에서 분쟁일로다. 언제나 산업화의 대척점에 섰던 공교육은 스스로 산업화로 키워온 사교육과 비교대상이 못된다. 유교에 스타강사가 못나올 이유가 없다.

산업화로 한국 유교의 르네상스를 이루려면 버려야 할 것도 많다. 사농공상, 관존민비 같은 왜곡된 주자학적 가치부터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 공맹 본래로 돌아가 시대에 맞는 인의예지를 제시하는 게 현대 유림의 임무다.

서원과 항교를 살리자는 목소리는 더 커질 것이다. 당장 유교활성화지원사업단 같은 이름부터 바꿔야 한다. 유교산업화지원단이 적절하다. 그나마 1년쯤 반짝 활동하다 흐지부지할 게 아니라 산업화의 실행방법론까지 모색해야 한다. 쥐꼬리 문화재지원으로 온갖 규제는 다 하려는 관료주의도 산업화라야 깬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