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투명 경영의 조건
얼마 전 외국 기업 고객으로부터 우리 로펌에 부패방지 관련 내부 시스템은 있는지, 그에 대한 교육 및 점검은 하는지에 대한 서면 답변을 요청받았다. 이 고객은 거래를 검토 중인 국내 대기업 A사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보내왔다. 외국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국내 기업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른바 미국의 해외부패방지법 (FCPA·Foreign Corrupt Practice Act) 컴플라이언스(법 제도 등을 총칭)와 연관된 움직임이다.

내수 시장이 작은 우리 기업들은 일찍부터 해외 시장을 개척했다. 그러나 상대방 국가에서는 자국 기업 보호 차원에서 여러 견제를 해왔다. 1990년대 반덤핑 통상 견제, 2000년대 특허소송과 공정거래 관련 규제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FCPA로 대표되는 반부패 규제가 주목받고 있다.

FCPA는 외국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거나 회계규정을 위반한 기업을 처벌할 수 있는 미국 연방법이다. 30년 전 제정됐지만 거의 집행되지 않다가 2008년 독일 내 한 유명 기업이 FCPA 위반으로 걸려 8억달러의 벌금을 미 연방정부로부터 부과받으면서 주목받았다. 이 기업이 아르헨티나 국책사업을 따기 위해 공무원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준 것을 비롯해 몇몇 나라에서 외국 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것이 적발된 것이다. 이 독일기업은 자국에서도 8억달러의 징벌금을 부과받았다. 미국법이 외국 기업에 적용될 수 있는지와 적용 요건 등에 대한 논의가 있기는 하나, 현실적으로 법 집행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 해외사업 비중이 높은 우리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회사 내 반론도 있겠지만 반부패 컴플라이언스를 확립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집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사전 예방책이다. 이렇게 준비해두면 혹시 사고가 나더라도 회사는 책임 감면 사유를 적용받을 수 있다.

우리 로펌과 A사에 반부패 컴플라이언스 여부를 물어온 외국 기업은 스스로 컴플라이언스를 집행해 준수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많은 외국 기업들은 이런 행동이 자연스레 습관처럼 나온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기업들이 미리미리 준비해 투명성 분야에서도 세계 일류가 됐으면 좋겠다.

김재훈 < 법무법인 광장 대표변호사 jaehoon.kim@leek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