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 전시된 황인기 씨의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 사비나미술관 제공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 전시된 황인기 씨의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 사비나미술관 제공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내달 18일까지 열리는 황인기 성균관대 교수의 개인전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 생태계 파괴마저 서슴지 않는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황 교수는 199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선정 작가, 2011년 아르코미술관 대표작가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의 소유자다. 그는 전통 산수를 플라스틱 레고, 크리스털 등으로 재해석한 ‘디지털 산수’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예전과 달리 존재와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로 관객과 마주한다.

“50년 만에 만난 (초등학교) 친구들과 동창회에서 50년이라는 시간의 겹이 마치 한순간처럼 느껴졌다”는 작가는 이를 계기로 지나간 과거만큼이나 빠르게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자신의 미래 모습을 눈앞에 펼쳐놓고 현재와 대화를 모색한다.

1층 전시장 한쪽 벽을 빼곡히 장식한 50개의 먼지 쌓인 액자 속에는 그림 대신 빛바랜 동시대 톱스타들의 사진이 흙 묻은 비닐을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미모의 여인들도 머잖아 빛바랜 사진처럼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히고 말 것이라는 현세의 무상함을 표현하고 있다.

2층에는 44개의 명품 가방이 마치 푸줏간의 고깃덩이처럼 쇠갈고리에 매달려 있다. 거리에서 3초마다 하나씩 볼 수 있다고 해서 ‘3초백’이라고 불리는 루이비통 가방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명품 가방으로밖에 드러낼 수 없는 현대인의 획일화된 취향과 가치관, 공허한 내면에 대한 야유다.

또한 고서처럼 퇴색한 84권의 타임지를 나란히 진열한 작품은 시대를 떠들썩하게 한 빅 뉴스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기억조차 되지 않는 정보의 퇴적물에 불과하다는 작가의 시각을 보여준다.

지하 전시실은 마치 죽음의 의식을 집전하는 주술의 장소처럼 꾸며졌다. 공중 부양된 주검 위에 하얀색 천을 드리운 듯한 다섯 개의 형상은 작가의 신체를 떠낸 것으로, 미래에 닥쳐올 자신의 죽음을 상징한다. (02)736-4371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