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수 열전] 비너스 vs 비비안, 기술경쟁 60년 속옷 라이벌…외국계 발 못붙이게 만든 'V'
“매출은 우리가 더 높은데 매장을 1㎠라도 더 줘야죠.” “무조건 저쪽보다 좋은 위치여야 합니다.”

백화점 란제리 상품기획자(MD)들에게 매장 개편 시즌은 두 라이벌 회사 직원들에게 시달리는 때다. 국내 여성 란제리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는 ‘비너스’와 ‘비비안’ 얘기다. 두 브랜드는 백화점마다 나란히 붙어 있으면서 치열한 신경전을 벌인다.

비너스를 만드는 회사는 신영와코루, 비비안은 남영비비안이다. 두 기업은 올해 ‘환갑(창립 60주년)’까지도 나란히 맞는다. 기업 역사와 규모, 한우물을 파온 사업 스타일까지 닮은 구석이 많은 속옷 시장의 ‘영원한 맞수’다.

◆여성 속옷 불모지서 시장 개척

비너스 모델 이하늬
비너스 모델 이하늬
국내 최초 여성 속옷 브랜드인 비너스의 뿌리는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영와코루 창업자인 고(故) 이운일 회장이 세운 신영염직공업사다. 비비안은 같은 해 남상수 명예회장이 창업한 의류 무역회사 남영산업이 모태다. 한동안 수출에 주력하다 1973년 비비안 브랜드를 내걸고 내수시장 공략에 나섰다. 남 명예회장은 “1960년대만 해도 브래지어를 만드는 기술은 ‘가슴 가리개’ 수준에 불과했고 브래지어를 아는 여성조차 드물었다”고 회고했다.

두 회사의 경쟁은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됐다. 비너스는 1988년 와이어에 형상기억합금을 쓴 ‘메모리브라’로 돌풍을 일으켰다. 비비안이 1995년 내놓은 ‘볼륨업브라’는 ‘가슴을 커 보이게 하는 속옷’이란 마케팅 포인트가 먹혀 열 달 만에 100만개가 팔려 나갔다.

◆경쟁으로 탄탄해진 ‘토종의 힘’

비비안 모델 소지섭
비비안 모델 소지섭
1990년대부턴 두 회사가 스타 마케팅에 뛰어들면서 ‘모델 섭외 전쟁’이 벌어졌다. 비비안은 김남주 송혜교 김태희 김아중 윤은혜 신민아 신세경 등을, 비너스는 김규리 고소영 장진영 이다해 한예슬 이하늬 등 톱스타들을 기용했다. 비비안은 최근엔 ‘역발상 마케팅’으로 남자 모델인 소지섭을 쓰고 있다.

영업 현장의 기싸움은 폭력사태까지 불렀다. 2011년 롯데백화점 잠실점에선 두 브랜드의 스타킹 판매직원끼리 싸움이 붙어 형사 입건되기도 했다. 요즘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신경전이 붙었다. 비비안은 “우리가 페이스북, 유튜브를 먼저 만들면 비너스가 따라하더라”, 비너스는 “우리가 후발주자를 왜 따라하느냐”며 으르렁거리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란제리 한우물’

박지호 롯데백화점 선임상품기획자는 “두 회사는 한국 여성에 맞는 기술 개발로 외국 브랜드의 공세를 막아낸 점을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토종의 힘’은 치열한 연구개발(R&D)에서 나온다. 신영와코루는 매년 4000종 이상의 샘플을 만들어 1500여종만 시장에 내놓는다. 조종환 신영와코루 마케팅팀 차장은 “요즘 과자 한 봉지보다 값이 싼 속옷도 많지만 여성 속옷은 함부로 만들어선 안 되는 상품”이라고 말했다.

두 회사는 란제리 외에 다른 사업에 한눈을 판 적이 없다. 창업자 2세인 이의평 신영와코루 사장과 남석우 남영비비안 회장이 가업을 잇고 있는 것도 공통점이다. 두 기업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연간 5000억원 규모인 국내 란제리 시장이 포화상태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비너스와 비비안은 대형마트, 홈쇼핑 등의 유통채널과 임산부, 어린이 등 틈새시장을 공략해 매출 올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