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규제개혁장관회의 겸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가 어제 청와대서 열렸다. 박 대통령은 이날 “일자리 뺏는 규제는 죄악”이라며 특단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규제개혁에 적극적인 공무원에는 감사 면책과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주되 규제 개혁에 저항하는 공무원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규제를 쏟아내는 국회 입법안, 법률·시행령에 없는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그림자 규제 및 행정지도 등에 대한 대책도 주문했다. 외국인의 구매를 막는 공인인증서 같은 구체적인 문제도 지적했다. 암덩어리 규제를 근절하겠다는 대통령의 강한 의지는 확고했다. 규제 감축 목표 50% 이상으로 늘려야
기획재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중앙부처의 경제 규제 1만1000건 중 10%를 올해 없애고 최소 20% 이상을 박 대통령 임기 중 철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20%의 규제 감축 목표는 너무 작다. 이 정도로는 어림없다. 역대정권마다 규제를 없애겠다고 약속했지만 수년 후면 흐지부지되고 말았던 것을 수없이 지켜봤던 터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수준(규제건수 7128건)으로 가려면 적어도 50% 이상의 감축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규제 건수를 줄이기 힘들면 규제비용이라도 줄여야 할 것이다.
지자체 ‘그림자 규제’ 심각한 수준
당장 중앙부처가 아니라 지자체야말로 암덩어리 규제의 온상이다. 싸구려 민주주의가 낳은 소산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자체의 규제량은 정부 규제량의 3.3배에 달한다. 2008년 3만962건이던 것이 2012년 4만7690건으로 급증했다. 지자체 공무원 1000명당 등록규제 건수도 같은 기간 112.5건에서 167.7건으로 늘었다. 규제는 대부분 조례나 규칙 등에 의해 만들어졌다. 지자체 의회가 맘대로 만든 것들이다. 법적 근거 없이 공무원들이 인허가를 마음대로 주무르기도 한다. 준법이 투쟁이 되는 나라가 돼버린 이유다.
감사원은 회계감사로 가야
감사원도 달라져야 한다. 감사원이 두려워 공무원들이 규제를 개선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감사원이 규제를 개선하는 공무원에게 사후면책을 한다는 개선안을 내놓았지만 제대로 작동할지 의문이다. 어떤 공무원도 해당 법률과 조례에서 금지하는 것을 자의적으로 풀 수 없는 탓이다. 사후면책은 공무원의 재량권 확대를 불러 상황을 악화시킬 우려도 있다. 감사원이 정책 감사를 버리고 예산·회계감사로 가야 한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국회 입법 사전·사후 심의장치 있어야
국회는 더 심각하다. 만드는 법안마다 규제 덩어리다. 19대 국회 발의 법안의 15%가량이 경제민주화 바람을 등에 업은 규제 법안이었다. 더구나 사전규제 심사를 받지 않아 졸속 규제나 과잉 규제가 부지기수다. 입법 단계에서 규제가 걸러지지 않으면 시행령 등 하위법령 작업 때 대거 규제가 양산된다. 의원입법에 대한 규제영향평가제가 발의돼 있지만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강조했듯이 입법안에 대한 사전·사후 심의장치가 절실하다.
이날 토론회에서 해당 부처 장관들은 기업인들이 지적한 규제를 당장 철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빙산의 일각이다. 9개 규제가 풀렸다고 해도 하나의 규제 때문에 기업인들이 골탕을 먹는 사례가 허다하다. 규제가 덩어리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당내에 규제위원회를 설치했지만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장시간 TV 생방송까지 했던 회의가 보기 좋았다. 그렇지만 끝장토론 한 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도 분명하다. 암덩어리 규제를 혁파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돼야 할 것이다.